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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

[스크랩] 요한계시록 구속사(제 8 강) : 일곱 나팔 재앙 시리즈

일곱 나팔 재앙 시리즈

(계 8:6-9:21)

 

 

Ⅰ. 도입

8-9장에 걸쳐 소개되는 일곱 나팔재앙에 관한 기사는 6장과 8:1-5에 걸쳐 기술된 일곱 인 재앙심판과 깊이 연루돼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인이 떼어 질 때, 나팔재앙을 초래케 하는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는 사건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8:1-2). 아울러 7장에 소개된 환상은 6장에 기술된 여섯 번째 인과 8:1-5에 걸쳐 언급된 일곱 번째 인을 떼는 사건 사이에 위치함으로 통상 삽입환상이라고 부릅니다. 7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 사천명의 하나님의 종들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하늘의 큰 무리들, 그리고 이들이 천상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에 관해 소개합니다. 이 두 공동체는 본질상 동일집단입니다. 동일집단을 지상적 관점(전투하는 교회)과 천상적 관점(승리한 교회)에서 기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하나님의 친 백성들로 곧 신구약시대의 교회원들을 총체적으로 대변합니다(계 6:14, 엡 1:13).

 

그렇다면 7장의 삽입환상이 이 시점에서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6:17에 언급된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띠고 주어진 의도적인 환상인 사실을 문맥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즉 6장에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의 인을 어린 양이 하나씩 뗄 때마다 세상가운데 임하는 무자비한 각종 인 재앙심판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인 재앙심판은 세상 가운데 각종 전쟁과 기근을 초래케 합니다. 이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는 사망과 살육이 지속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섯 번째 인을 떼실 때에는 하늘의 일월성신의 위계질서가 무너짐으로 온 자연계의 질서가 뿌리 채 흔들리는 대 혼란과 격변이 야기됩니다(6:12-14). 그럼에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적극 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피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아닌 산과 바위로 묘사된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말입니다(6:15-16). 이런 사실은 심판의 와중에서도 불신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게 반응하는 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광경입니다. 죄의 왕노릇 하는 권세가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죄의 근절은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할 뿐입니다. 노아시대의 물심판도 결코 당시 인간의 죄를 근절시키지 못했습니다(창 8:21). 대속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죄 문제의 해결은 본질상 불가하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입니다(히 9:22, 레 17:11, 행 4:12). 불신자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선택사상이 결과론적으로 확인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막 16:15-16).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 도처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무자비한 종말적 심판 앞에서 누가 제외될 수 있으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 말입니다. 이런 질문이 다름 아닌 6:17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7장의 삽입환상이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6:17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7장의 삽입환상을 통해 명백하고도 충분하게 답변되고 있음을 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의 총화인 십사만 사천, 곧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근거해 죄사함과 의롭다고 여김 받은 하늘에 속한 큰 무리들로 국한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거합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창세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구원받은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를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가 이런 사실을 증거합니다(엡 1:13, 12x12x1000=144,000).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되었다는 표현이 이런 사실을 증거합니다(요 1:29).

 

따라서 7장의 삽입환상은 6장의 인 재앙심판으로부터 제외 돼 구원을 받게 되는 신약의 교회공동체를 총체적으로 가리킬 뿐 아니라, 이후 소개되는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 심판으로부터도 절대 안전하게 구원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줍니다. 결국 세상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 불신자들, 그리고 죄로 인해 애매히 동반 타락하게 된 자연계를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피조물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며 탄식하고 있다는 로마서 기자의 기술은 이런 사실을 확증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롬 8:19-22). 이런 이유로 7장의 삽입환상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만이 죄로부터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첩경임을 강력히 증거해 줍니다(행 4:12). 이로 인해 7장의 삽입환상은 문맥적 성격상 독립적이기 보다는 6장의 인 재앙과 깊이 연루돼 있으면서 8-9장의 일곱 나팔 재앙과도 연결되는 고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8장을 통해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는 것을 통해 도입되는 일곱 나팔재앙의 실상을 살펴봅니다.

 

Ⅱ. 전개

 

어린 양이 일곱 번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 앞에 시위해 있던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습니다(8:1-2). 이는 일곱 인 재앙이 일곱 나팔 재앙을 도입시키는 촉매역할을 담당함으로 이 두 재앙이 본질상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시사합니다. 심판의 주체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요 5:22) 그것이 인 재앙이든, 나팔재앙이든, 아니면 대접 재앙의 형식을 띠고 주어지든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 재앙이나 나팔 재앙 및 대접 재앙이 시간상으로 반드시 연속적인 사건임을 증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첩과 반복과 연속성이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오히려 복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례로 6:12-13에 기술된 여섯 번째 인 재앙으로 말미암는 일월성신의 종말적 징조는 8:12에 소개된 네 번째 나팔재앙의 결과로 나타난 일월성신의 징조에 선행되는 상황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침이 선행돼야 그 결과로 격변의 징조가 나타나게 되는 법인데, 인 재앙으로 인한 일월성신의 징조가 나팔재앙으로 인한 일월성신의 징조보다 앞 서 기록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게 되면 두 재앙 사이에 시간적인 연속성이 극복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가 하면 세 재앙은 뒤로 갈수록 재앙의 정도가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봅니다. 인 재앙에서는 자연계의 피해가 사분의 일에 해당되었으나(6:8), 나팔재앙 때는 자연계의 삼분의 일로 피해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8:7-12). 나아가 일곱 대접재앙의 성격과 관련해 저자는 이를 마지막 재앙이라고 표현합니다(15:1). 이는 세 재앙의 관계가 나름대로 시간적인 연속성을 아주 배제하지 않음을 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임박해 나타나게 될 종말적 심판현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은 한결 같이 세 재앙의 마지막 일곱 번째와 깊이 연관돼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8:1-5, 11:15-19, 16:17-18). 이런 종말적 현상은 동시에 세 재앙이 중첩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본 계시록에 나타나고 있는 세 종류의 종말적 재앙 현상은 어린양의 구속사역을 시점으로 재림에 이르는 전 교회역사 기간 동안 자연계와 세상의 불신자들, 그리고 사단과 그의 추종세력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이고, 점진적이면서도 중첩적인 성격을 띠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일곱 나팔재앙을 소개하고 있는 본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8:6-13절까지로 네 나팔재앙에 관해, 둘째는 9:1-21로 두 나팔재앙에 관해, 그리고 10:1-11:14까지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사이에 존재하는 두 번째 삽입환상이 소개되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재앙은 일곱 번째 인 재앙이 그랬듯이 10:1-11:14까지의 삽입환상을 건너뛰어서 11:15-19을 통해 소개됩니다.

 

1. 일곱 나팔재앙의 준비(8:1-6)

 

일곱 나팔재앙 심판은 어린 양께서 일곱 째 인을 떼심으로 유도됩니다(8:1-2). 이는 나팔재앙이 인 재앙과 불가분의 관계성을 맺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 일곱 째 인을 떼시는 사건은 일곱 나팔재앙을 도입시키는 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면서, 동시에 나팔재앙의 시행이 다섯 째 인의 결과로 말미암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6:9-11)에 대한 응답(8:3-5)의 일환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본 절에서 순교자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현상은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땅에 쏟는 상징을 통해 구체화됩니다(8:5).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심판의 표적으로 등장합니다. 이와 때를 맞춰서 일곱 나팔을 받은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6절). 이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일환으로 일곱 나팔재앙을 유도하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이 집행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해 줍니다.

 

이제 일곱 인으로 봉해졌던 비밀의 책(5:1)은 어린양께서 마침내 일곱 인을 다 떼심으로(8:1) 완전히 열려진 책이 되었습니다(5-6상). 비밀은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성취된 구속사역이 이를 밝히 증거해 줍니다(엡 1:7-10, 3:3-6, 골 1:26-27, 벧전 1:10-12).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이런 구속사역의 성취를 ‘이미’와 ‘아직’의 이중적 원리 속에서 기술합니다. 때문에 구원과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완성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성취는 사단을 사실상 결박시키고(계 20:1-3, 창 3:15), 하나님 나라를 세상 가운데 ‘이미’(already) 도래시킴으로(마 12:28)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현재적으로 가능케 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계시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이 증거 될 때, 이를 믿음으로 수납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이를 거절하는 자에게는 정죄와 심판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성경은 준엄하게 경고합니다(막 16:15-16, 요 3:18-19).

 

2. 처음 네 개의 나팔 재앙들(8:7-13)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합니다. 처음 네 개의 나팔 재앙의 대상은 주로 자연계에 집중됩니다. 첫째 나팔로 말미암는 재앙이 땅과 수목과 각종 풀들에게 임합니다. 둘째 나팔로 인해 바다와 그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 그리고 배들이 피해를 받습니다. 셋째 나팔은 강들과 여러 샘들을 재앙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넷째 나팔 재앙으로 해와 달과 별이 침을 받습니다. 다음으로 네 개의 나팔 재앙의 수단은 첫째 나팔과 관련해서는 피 섞인 우박과 불입니다. 둘째 나팔 재앙은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 나팔 재앙은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입니다. 넷째 재앙은 침(sting)을 받습니다. 세 번째로는 나팔 재앙으로 인한 피해의 범위입니다. 저자는 한결 같이 나팔 재앙으로 인한 피해의 범위가 자연계의 각 분야에서 삼분의 일로 한정해 기술합니다. 이는 겔 5:2, 12절 등의 반영으로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비록 하나님의 심판이 무자비한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위가 부분적인 것으로 인해 여전히 회개를 촉구하며 구원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나팔 재앙은 여전히 과도기적인 심판의 성격을 띠면서 종말의 최후의 심판을 지향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네 개의 나팔 재앙 속에 담긴 구속사적 특징입니다. 이는 재앙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우박/불/피(8:6-7/출 9:13-25), 바다가 피로 변함(8:8-9/출 7:14-25),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함(8:10-11/출 7:21), 일월성신이 침을 받아 어둠이 임함(8:12/출 10:21-23) 등등의 현상들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애굽 전역에 내렸던 하나님의 재앙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출애굽사건과 관련해 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의 성격과 의미를 바르게 깨닫는 일은 요한 계시록에 기술된 심판의 의도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도 요한은 출애굽 사건의 모티브를 나팔 재앙을 기술하는데 유효적절하게 적용시킴으로 계시록에 소개된 심판의 본의가 무엇인 지를 증거해 줍니다.

 

출애굽 사건과 관련해 모세의 열 가지 재앙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는 첫째로 애굽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성과 전능성을 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회개의 촉구가 아닙니다. 당시 애굽왕 바로의 마음은 강퍅할 대로 강퍅해져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적극 대적하는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재앙은 바로의 강퍅함과 불순종, 그리고 불경에 대한 정당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주어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성과 유일성 및 전능성을 만방에 현시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출 7:5, 17, 8:10, 22, 9:29, 10:1-2). 특별히 출 9:16과 29절을 소개합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찌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둘째로 모세의 열 재앙의 대상이 철저하게 애굽 왕 바로와 신하 및 백성들에게 국한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열 재앙으로부터 제외되었습니다. 오히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해 구원을 보장받았습니다.

 

이상의 모세 재앙의 원리는 동일하게 계시록의 인/나팔/대접 재앙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해 계시록에 기술된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심판은 그 자체로 최종 심판의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회개의 여지 남아 있음), 심판의 당사자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계 9:20-21). 마치 노아의 물 심판을 경험한 후에도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듯이 말입니다(창 8:21, 6:5). 따라서 계시록에 소개된 심판의 성격은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재차 확증시켜 줍니다. 다음으로 당시 모세의 재앙이 애굽 왕과 신하 및 애굽 백성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했듯이 계시록에서의 심판 또한 그 대상이 땅에 속한 자들 곧 사단과 그의 추종세력 및 불신자들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따라서 네 개의 나팔 재앙의 내용들이 상징을 통해 계시되고 있는 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총체적인 관점에서 어린양의 구속사역이 성취된 이후부터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지 자연계와 생태계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은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종말적 재앙과 그 영향으로부터 성도들조차 아주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런 심판이 결코 성도들을 궁극적으로 멸망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7장의 삽입환상 계시는 일곱 인 재앙으로부터 하나님의 인 맞은 교회공동체가 철저하게 보호와 구원을 보장받고 있음을 확증시켜 줍니다. 나아가 지상의 교회공동체는 동시에 하늘에 속한 천상의 교회로 존재하고 있음을 동시에 확인시켜줌으로, 고난에 직면해 있는 지상의 교회공동체가 환난 중에서도 소망가운데 미래지향적인 신앙관을 의연히 견지할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계 8:13은 나팔 재앙 자체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수리의 큰 소리’라는 상징적 표현을 통해 나머지 세 개의 나팔 재앙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도입시킵니다. 이런 이유는 화로 호칭되는 세 개의 남은 재앙이 앞의 네 나팔 재앙보다 더 가혹하고 파괴적이며 신속하게 진행될 것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심판의 차별성은 대상에 있어서 자연계에 임했던 앞의 네 나팔 재앙과는 달리, 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한정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단의 세력에 동조하여 짐승에게 경배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불신자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킵니다(9:4).

 

요한은 네 개의 나팔 재앙이 임한 후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비상하면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임할 것이라”는 소리를 발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독수리의 존재는 크게 구원(출 19:4, 사 40:31)과 심판 및 멸망과 죽음(렘 48:40-42, 겔 17:3, 호 8:1, 마 24:28)이라는 양 극단의 경우와 밀접하게 연관돼 사용됩니다. 이상의 용례 중에서 13절의 내용에 적합한 경우는 후자입니다. 본 절에서 독수리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소위 ‘삼중적 화’를 발합니다. 화(禍)의 삼중성은 남은 세 개의 나팔 재앙의 대상과 범주가 동질성을 띠고 있으며 정도 면에서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곧 그 대상에 있어서 사단과 밀접하게 관계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제한적으로 가리킵니다.

 

3.다섯 째 나팔 재앙(9:1-11)

 

다섯 째 천사가 등장해 나팔을 부는 것을 신호로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이때 요한은 재앙이 임하기 전, 먼저 하늘에서 별 하나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그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는 모습을 목격합니다(9:1). 이는 묵시적 표현으로 본 절에서 별은 의인화된 인격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약적 배경 속에서 별은 흔히 천사나 하늘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 나아가 사단을 암시하는 데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민 24:17, 삿 5:20, 욥 38:7, 단 8:10, 사 14:12). 그렇다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요한의 이런 표현은 구약의 사 14:12-14을 배경삼고 있습니다. 이사야 본문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별’(12절하)이란 표현은 장차 멸망당할 바벨론 왕(사 14:3-4)을 ‘아침의 계명성’(12절상)으로 부르는 내용에서 확인됩니다. 본문은 중간기 시대의 문헌에서 사단이나 그를 추종하는 악한 천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이필찬, 2006, 409). 예수님께서도 눅 10:18을 통해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70인 제자들의 복음전파(눅 10:17)와 관련된 말씀으로,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나아가 계 12:7-9에서는 “사단의 내어 쫓김과 관련해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고 기술합니다. 본문에서 사단은 분명히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어 쫓긴 사실이 확인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보다 본질적인 관점에서 계 20:1-3의 사건이 가능케 된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계 20:1-3의 말씀은 사단이 하늘로부터 내어 쫓겨 땅의 무저갱에 쇠사슬로 결박당한 채 일천년 동안 완전히 감금당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눅 10:18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계 12:7-8, 12, 20:1-3, 눅 10:18 등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의 결과로 사단이 땅으로 내어 쫓긴 정황을 다양한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 기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사실은 보다 근원적으로 창 3:15에 예언된 여자의 후손언약이 구체적으로 성취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상의 논증에 근거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계 9:1)의 정체는 사단으로 넉넉히 추정됩니다.

 

다음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 곧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계 9:1하). 계시록에서 무저갱은 사단과 그의 추종 세력들이 거하는 처소 또는 임시적인 감옥의 성격을 띤 곳으로 설명합니다(11:7, 17:8, 20:1-3, 눅 8:31). 혹자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우주 가운데 있는 물리적인 장소나 공간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저갱 또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한편 별(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의미는 무저갱이 어떤 의미를 가졌든지 사단과 불가분의 관계성을 맺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동시에 사단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다섯 째 나팔 재앙의 내용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하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줍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진 분이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계 1:18).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에 있어서 사단의 존재와 그의 역사 또한 본질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잠 16:4, 욥 1:12, 2:6, 왕상 22:20-23). 피조물의 행동은 철저히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의존돼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과 만사의 진행과 결국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주관될 뿐입니다(롬 11:36). 이런 원리 속에서 복과 화 또한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돼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계 20:1-3을 통해 사단이 무저갱에 결박된 채 감금당한 사건이 주는 의미는 예수님의 초림사역으로 인해 사단의 현재적인 상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지를 보여주기 위함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은 사단적 세력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과 아울러, ‘사단이 무저갱에 갇혔다’는 표현을 통해 현재 사단 자체가 처한 상태가 어떠함을 보여주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계 9:2부터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 곧 사단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사단이 무저갱을 열자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가 어두워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마치 창 19:28에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심판당하는 과정에서 연기가 옹기점의 연기처럼 올라온 사실과 연관시켜서 말입니다. 이때 요한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함께 황충들이 땅위로 나오는 모습을 봅니다. 이들은 전갈의 권세를 받습니다. 이는 황충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황충에 대한 구약적 배경은 욜 1:4, 6-7, 2:25에서 발견됩니다. 구약에서 황충은 신적 심판의 상징으로 묘사되면서 온갖 전쟁과 파괴와 멸망의 대명사처럼 사용됩니다(신 28:42, 왕상 8:37, 대하 6:28, 시 78:46, 105:34-35). 그런데 이들 황충이 더하여 전갈의 권세를 받습니다. 성경에서 뱀과 전갈은 동의어적으로 사용되면서 원수의 모든 능력의 전형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봅니다(눅 10:19). 이런 사실은 황충의 권세를 전갈의 권세에 비교해 설명하면서 인간을 향한 심판의 결과가 얼마나 극한 고난과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인지를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들 황충에 의한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불신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본 나팔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의 차별성은 어린양의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애굽 전역에 내린 장자살해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았던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출 12:1-28). 나아가 요 3:18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을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다섯 째 나팔 재앙으로 황충에 의한 심판의 대상이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에게 국한된다는 설명(계 9:4)은 이미 본 재앙이 이 시대의 불신자들에게 폭 넓게 임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고후 4:4). 이로 보건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구원의 특권을 누리며 심판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한편 5절을 통해 황충으로 인한 재앙의 기간이 다섯 달 동안이란 표현은 심판기간이 한정돼 있음으로 고난 중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황충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신 사실 속에서 이런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한편 황충에 의한 죽지 못할 고통은 가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옥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황충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계 9:7-12에 의하면 황충들의 모양은 첫째로 ‘전쟁을 위해 예비한 말들 같다’고 했습니다(7절상). 이는 욜 2:4-5을 반영합니다. 요엘서(2:4-5)에서 기병이나 병거는 메뚜기와 황충에 비유되어(욜 1:4) 이스라엘의 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바벨론 군대를 표상합니다. 이런 이유로 황충의 모양을 ‘전쟁을 위해 예비한 말들 같다’고 소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표현입니다. 둘째로 황충은 머리에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습니다(7절중). 금 면류관이 의미하는 바는 지속적인 승리에 대한 상징일 것입니다. 이는 요엘서 2장에서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해 파죽지세로 공격해 오는 바벨론 군대에서 그 이미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승리의 의미란 황충을 통해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시려는 의도가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셋째로 황충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았습니다(7절하). 이 또한 욜 2:5-7의 반영입니다. 요엘서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계하기 위해 동원될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들을 일컬어 강한 군사(욜 2:5), 용사(2:7), 무사(2:7) 등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요엘서의 용례는 ‘사람 같다’는 계시록의 표현으로 일괄해 통용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황충의 모습이 사람 같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침략해 오는 바벨론 군대를 상징적으로 총칭하는 표현인 셈입니다. 다음으로 황충의 모양이 여자의 머리털 같은 것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욜 1:6), 철 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날개 치는 소리는 많은 병거와 말들이 전쟁으로 달려가는 것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다고 기술합니다(8-10절). 이상의 비유적인 설명은 총체적 관점에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단적 권세와 파괴력과 잔인함을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바벨론 군대의 이미지를 차용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섯 째 나팔 재앙에서 황충의 이미지를 통한 심판광경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세력을 도구삼아 불신자들에게 무자비한 심판을 속행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계 9:11은 1절 내용의 반복이며 보충설명에 해당됩니다. 이는 황충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하고 있는 2-10절 내용이 구조상 연속성을 띠고 있는 하나의 단위 문단을 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무저갱의 사자 곧 황충들의 임금’(11절)이란 표현은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별’(1절)과 동의어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 “저희(황충)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11절)고 기술하고 있는 본문은 황충들이 문자적인 황충이 아니라 사단의 추종세력들인 악령의 집단적인 활동임을 계시해 줍니다. 본 절에서 아바돈(히브리 음)이나 아볼루온(헬라 음)은 파괴자란 뜻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별 곧 무저갱의 사자인 사단에게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섯 째 나팔 재앙에서 사단의 파괴적인 속성을 그의 추종세력들인 황충의 이미지를 통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추종세력들인 악령들을 상징하는 황충들에 의한 피해는 극심합니다. 마치 전갈에 물려 독이 온 몸에 퍼진 것 같은 죽음의 고통이 엄습한다고 설명합니다. 차라리 죽기를 청하나 죽음이 저들을 피한다고 전합니다. 이는 다섯 째 나팔 재앙의 취지가 죽음과 지옥의 형벌을 선고하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의 심판인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래서 황충에 의한 심판 기간도 다섯 달로 제한됩니다. 물론 다섯 달이란 본문의 성격상 문자적인 다섯 달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표현으로 한정된 기간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사단의 추종세력들인 악령들을 상징하는 황충의 해침과 전갈에 의한 쏘임은 이 시대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까요. 바울 사도는 딤후 3-4장을 통해 말세의 징조를 이렇게 기술합니다. 먼저 딤후 3:1-5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개인주의의 만연과, 물질만능주의의 팽배 및 형식주의가 보편화 될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딤후 4:3-4에서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비 진리가 성행함으로 진리가 철저히 외면당할 것에 대한 경고성 발언입니다. 말씀이 인간의 현세적인 행복과 성공을 위해 수단으로 전락되며, 이 과정에서 하나님조차도 우상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평가절하 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이런 결과는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공법은 점차 사라져가고, 대신 온갖 불의와 불법 및 갖가지 부정과 부패가 만연될 것이며, 상호 불신과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팽배돼 순수한 인간성은 상실되고 하나님 경외는 실종될 것이며 공동체 의식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을 전망케 합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사단으로 말미암는 미혹의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고후 4:4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은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한 구속사역의 성취는 종말의 시작이며(히 1:2, 약 5:3, 고전 10:11, 딤후 3:1) 재림은 종말의 마감이 될 것입니다.

 

4. 여섯 째 나팔 재앙(계 9:12-21)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내용의 성격상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먼저 12-14절은 도입부분입니다. 15-19절은 나팔 재앙의 내용을 기술합니다. 마지막 20-21절은 재앙의 결론부분으로 여섯 번째 재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회개하지 않음을 강조해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강조하는 한편, 진정한 회개는 오직 교회의 복음증거를 수납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어서 기술하고 있는 두 번째 삽입환상(10-11장) 군(群)을 통해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8-9장에 걸쳐 소개되는 나팔 재앙에 관한 내용은 10장-11:1-13의 삽입환상의 필요성을 제공하면서 이어서 나타나는 12-14장의 세 번째 삽입환상 군(群)을 통해 추가적인 설명에로 독자들을 인도합니다.

 

첫째, 12-14절의 도입부분입니다. 12절은 첫째 화(禍)가 지나갔음을 선언합니다. 첫째 화란 8:13에서 앞의 네 개의 나팔 재앙이 끝난 후, 나머지 세 개의 나팔 재앙을 ‘독수리의 울음소리’를 통해 세 번에 걸친 화, 화, 화로 대체해 묘사한 내용과 밀접하게 관계됩니다. 이는 첫 번째 화인 다섯 째 나팔 재앙(9:1-11)이 이미 끝났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후 두 개의 화인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 재앙이 남은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9:12-21)은 두 번째 화로서 곧 여섯 번째 나팔 재앙에 해당됩니다.

13절은 여섯 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는 모습을 기술합니다. ‘하나님 앞’이란 표현은 인 재앙은 물론 나팔 재앙의 시행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 집행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다양한 ‘신적 수동형’의 표현을 통해 살펴 본 바 있습니다(6:2-8, 9:1, 3-5절). ‘금단 네 뿔’이란 표현은 앞서 6:9-11과 8:1-5에 언급된 순교자들의 기도와 연관돼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의 금 향단과 내용적으로 연루돼 있는 표현입니다. 이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재앙의 형식을 띠고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에게 가차 없이 임하는 것을 기술하는 내용입니다. 14절은 금단에서 발해진 음성이 여섯 째 나팔을 가진 천사를 향해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여섯 째 나팔 재앙이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는 것을 통해 시행될 것임을 가리킵니다. 결박당한 네 천사란 표현은 이들 천사가 사단의 추종세력들임을 암시합니다. 이들은 15-16절에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 된 이만만의 마병대와 동의어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들은 사단의 하수인들로서 동질집단인 셈입니다. 마치 다섯 째 나팔 재앙에서 무저갱에서 올라온 무수한 황충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바벨론의 마병대를 상징하면서(욜 1-2장)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사단의 하수인들인 악령들로 묘사되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만만은 본문에서 문자적으로 해석될 숫자가 아닙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만만은 천천의 용례(삼상 18:7, 시 68:17)와 더불어 많은 숫자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들이 풀려납니다(15절).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 된 자들입니다. 먼저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이 강대국들과 대치하고 있는 동북쪽 경계선입니다(창 15:18, 수 1:4). 구약적 배경에서 유브라데 강은 아마겟돈 지역(계 16:16)과 더불어 격전의 장소를 일컫는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와 같은 제국들은 당시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늘 유브라데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이필찬, 2006, 432). 일례로 예레미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열국을 심판하는 광경을 묘사하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편 유브라데 하숫가에서 희생을 내실 것이로다”(렘 46:10)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유브라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사 8:7)라고 유브라데 강의 창일하는 위력의 이미지를 이스라엘의 적대세력인 강대국의 막강한 권세와 파괴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반영합니다. 계시록 본문은 이런 구약적 배경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브라데에 결박당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한 명령은 엄청난 재앙을 예고해 주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네 천사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악한 천사, 곧 사단의 세력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 년 월 일 시”란 표현은 특정한 날짜를 지목한 것이 아닙니다. 본 나팔 재앙이 네 천사들에 의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주관될 것과 모든 종말적 사건들의 전개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차질 없이 시행될 것을 시사합니다. 네 천사의 결박이 풀어졌다(15절)는 것은 이만만으로 표현된 부지기수의 악령의 세력들이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임으로 아비규환의 참상이 빚어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자구(字句)적으로 해석해 실제적인 인명살상의 차원에서 볼 것은 아닙니다.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 5:9에서는 귀신 들린 자가 이르기를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란 표현이 있습니다. 그 귀신은 귀신 들린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귀신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5:8)고 명령하심으로 그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반면 계시록에서는 악령들을 사람에게 들어가도록 허용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구합니다’(눅 8:31). 계시록에서는 무저갱을 여시고 악령들의 활동을 촉구하십니다. 심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만만의 마병대’의 출동이란 상징적 표현은 사단적 세력들의 준동을 이용해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심을 가리킵니다. 마병대와 황충의 파괴력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의 파괴력이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의 피해를 훨씬 능가하는 것을 봅니다. 일곱 인 재앙과 비교해서는 재앙의 성격과 정도가 중복적이면서도 발전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17-19절은 이만만의 마병대와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먼저 17절에서 말과 탄자들은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의 흉갑을 입었습니다. 이는 황충들이 철흉갑을 두른 것과 방불합니다(계 9:9). 말들의 머리가 사자 머리 같고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온다는 표현은 구약적 배경(창 19:24)에서 심판의 위력과 맹렬함이 마치 사자와 같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서 나옵니다(19절). 꼬리는 뱀과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다는 표현은 말의 활동이 인격체인 사단의 파괴적이며 기만적인 속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사람 삼분의 일이 살육을 당한다(18절하)는 설명은 15절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 줄 압니다. 다시 말해 본 나팔 재앙이 최후의 심판이 아닌 사실과, 여전히 회개를 촉구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은혜성과 경고성이 병행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심판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무관한 불신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이요(마 8:22), 이미 심판에 처해진 비참한 삶(요 3:18)이란 사실을 성경은 밝히 증언해 줍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엡 1:4-6)은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무익한 종(눅 17:10)의 심정이 이런 한량없는 구원의 은혜에 깊이 접촉된 데서부터 나와진 적극적인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동인(動因) 또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베풀어주시는 일방적인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곧 죄와 사망과 심판 및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와 궁극적 관심으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전제된다는 사실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은 목적적으로 기능합니다. 결코 보상을 바라는 방편적 신앙이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는 온 천하보다 귀한 절대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마 16:26).

 

20-21절은 결론 부분입니다. 특별히 여섯 째 재앙의 내용인 마병대와 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저들은 ‘손으로 행하는 일’을 결코 회개치 않습니다(20절상). 여기서 ‘손으로 행하는 일’이란 손으로 말미암는 제한된 범죄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전인적인 삶 전부를 총칭하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행하던 일로부터 돌이키기는커녕 더욱 집착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고발입니다. 본 결론 부분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각종 나팔재앙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결코 회개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각종 우상숭배와 종전에 행하던 온갖 범죄행위를 탐닉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범죄 행태는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각종 우상숭배와 음행과 탐욕과 불법적인 행동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롬 1:23, 28-32, 골 3:5, 계 21:8). 성경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저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상실한 마음대로 두셨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롬 1:28). 이런 식으로 저자는 나팔재앙을 통해 인간의 완악함과 강퍅함을 고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독자들에게 확증시켜 줍니다.

 

한편 8-9장에 소개된 나팔 재앙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전혀 회개의 빛을 보이지 않던 저들이 11:13에서 “....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표현에 의해 정황이 반전되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상의 논리전개에 따르면 10장과 11:1-12에 걸쳐 기술되고 있는 소위 ‘제 이의 삽입환상 군(群)’의 내용이야말로 8-9장에 대한 상황반전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담긴 내용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6:17의 인재앙의 결론 부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7장의 첫 삽입환상이 주어졌듯이 말입니다. 곧 ‘누가 인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란 질문에(6:17),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십사만 사천과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흰 옷 입는 큰 무리들이라고 답하듯이 말입니다(7장).

 

이제 동일한 스토리 전개의 원리를 따라, 8-9장의 나팔재앙을 통한 질문(두려워 않고 회개치도 않음)에 10장과 11:1-12의 삽입환상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따라서 10-11장의 삽입환상의 본의는 나팔재앙과의 불가분의 관계성을 통해 그 진정한 의미와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Ⅲ. 결론

 

8-9장에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나팔 재앙은 다섯 째와 여섯 째 나팔 재앙에서 절정을 맞습니다.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는 땅과 바다와 강 및 일월성신으로 주로 자연계를 대상으로 삼는 반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9:4)들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나팔 재앙에서는 무저갱에서 나오는 황충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황충들은 요엘서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침공하는 바벨론 군대를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요엘서의 황충 이미지를 차용해 불신자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기술합니다. 계시록 9장에서 황충은 저들의 임금을 무저갱의 사자와 파괴자로 일컫는 아바돈 또는 아볼루온으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사단의 졸개들인 악령들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하나님께서 황충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불신자들을 해하게 하심으로 고통스런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통해 사단적인 세력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심을 역설적으로 소개합니다.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은 구약적 배경에서 이스라엘과 당시 열강들과의 전쟁의 화약고와 방불했던 유브라데 강의 지역적 특성을 통해 심판의 강도를 강조합니다. 유브라데에 결박당했던 네 악한 천사의 결박해제는 이만만의 무수한 마병대를 충동해 엄청난 살육사건을 도래시킵니다.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 중 삼분의 일을 살해합니다. 여전히 미래적인 최종 심판은 유보됩니다. 심판 중에도 구원의 은혜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들 마병대의 정체는 황충과 본질상 동질성을 띠면서 파괴적인 사단의 세력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처럼 사단과 그의 세력들 또한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일에 단지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10장과 11:1-12은 7장에 이어 제 이의 삽입환상 군(群)을 이룹니다. 본 삽입환상은 7장이 그랬듯이 8-9장에 소개된 나팔 재앙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특별히 나팔재앙의 결론 부분인 9:20-21의 내용을 통해 제기되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주어진 삽입환상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팔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더욱 우상숭배와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적극 도전하는 망령된 처사입니다. 그렇다면 6:17에서 발견할 수 있었듯이 본 나팔 재앙을 통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들 패역한 자들을 회개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반전의 비결은 없단 말인가. 정녕 세상은 하나님의 유보적인 심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철저하게 멸망당해야만 될 것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런 질문에 반전의 근거와 해답을 제공하고자 10장과 11:1-12에 소개된 삽입환상의 내용이 주어진 것입니다.

출처 : remnant7000
글쓴이 : sky blu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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