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계시록2

[스크랩] 요한계시록 구속사(5장) : 인 봉한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어린양

제 5 장
인(印) 봉한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어린양
(계 5:1-14)

Ⅰ. 도입

계 4-5장은 4-16장까지 연결되는 제 2 환상 군의 토대를 이루면서 특별히 하늘 보좌에 대한 환상이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하늘 보좌 환상의 핵심사상은 보좌가 세상역사의 통치를 주관하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이후 6-16장에 걸쳐 시행되고 있는 일곱 인(印)재앙, 일곱 나팔재앙, 일곱 대접재앙의 진원지가 하나님의 보좌인 사실을 종말적 심판의 현상인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보좌로부터 발생되고 있는 것을 통해 증시해 줍니다.

하늘 보좌 환상은 이런 사실 외에도 신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총칭하는 24장로의 환상,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 환상과 수많은 천사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으면서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모든 피조물이 연합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모습으로 곧 천상의 예배광경을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연합과 일치 및 조화와 균형은 첫 창조 시 에덴동산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경륜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뱀의 미혹으로 인한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이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심각한 방해와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소위 ‘하나님의 딜레마’(God's Dilemma)란 수사적 표현이 제기됩니다. 다시 말해 창 1:28에 근거한 창조언약은 은혜언약의 성격상 아담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담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을 촉구합니다. 반면에 창 2:17의 선악과 언약(아담 언약)은 금령(禁令)을 어긴 아담에게 형벌로 주어진 죽음을 요구함으로 하나님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수사적 용어를 빌려 ‘하나님의 딜레마’란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딜레마’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다름 아닌 구속의 방식입니다. 대속물을 통해 아담의 죄를 구속해 주심으로 계속 창조언약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방안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보증하고 있는 방도가 다름 아닌 ‘여자의 후손언약’입니다(창 3:15). 여자의 후손언약은 아담의 범죄를 구속의 방식을 통해 해결해 주심으로 아담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에덴동산의 회복 곧 재창조사역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따라서 창조언약 속에 담긴 소위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창 1:28)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대위임 명령(Great Commission, 마 28:19-20) 안에서 성취가 보장됩니다. 이런 식의 하나님의 재창조 계획은 마침내 여자의 후손언약의 당사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곧 성육신사건과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통해 일차적으로 성취되었고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계 21:1-7).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통해 보고 있는 하늘 보좌의 환상은 본질에서 일면 에덴동산의 회복을 계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교회의 종말론적 완성을 통해 최종 실현된다는 것이 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합니다(계 21-22). 따라서 하늘 보좌의 환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계 4장의 강조점은 첫째로 하늘에 삼위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과, 둘째로 하늘 보좌는 우주 만물과 만사의 통치의 중심으로 기능하며, 셋째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심히 합당한 분이란 사실에 집중된다고 하겠습니다.

4장을 통해 하늘 보좌의 환상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5장은 하늘 보좌의 환상을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시킵니다. 5장의 중심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굳이 ‘어린양’으로 묘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함에 있어서 철저히 종말을 향한 언약적 구속사의 점진적인 진행이란 관점을 부단히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새 언약사상을 통해 예언했던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주제를 교회의 종말론적 승리와 완성을 통해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구약적인 배경을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새 언약의 중심메시지는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아의 대속사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가 회복된다는 사실에 집중됩니다(렘 31:31-34, 사 53:5-6). 이와 관련해 선지자들의 새 언약 사상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인격과 사역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지적입니다(히 10:14-18).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성격을 가리켜 예수님의 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눅 22:19-20). 따라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예식을 폐하시고 대신 제정해 주신 성찬식은 새 언약에 근거한 예수님의 헌제사역을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성례전인 셈입니다.

이상의 관점에 근거해 구약성경은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오실 메시아의 헌제사역을 속죄제사와 관련시켜 한결 같이 어린양의 죽음으로 예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출 12:3, 사 53:7). 그래서 구약의 어린양은 다름 아닌 신약의 대속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모형인 것입니다(요 1:29, 고전 5:76, 벧전 1:19). 이처럼 요한은 구속사의 진전이란 관점에서 참 이스라엘인 교회의 종말론적 승리와 완성을 선지자들의 새 언약에 보장된 이스라엘의 미래적인 회복과 연관시키면서 새 언약 성취의 근간인 메시아의 고난을 어린양의 속죄사상을 통해 예표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한이 5장의 하늘 보좌의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어린양의 죽음으로 대체해 설명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연유합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고난의 종인 메시아를 조명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늘 보좌 환상의 연속인 5장을 통해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오른 손에 인봉한 책을 펴실 유일한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인봉한 책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후 전개될 6-18장의 내용을 통해 인봉한 책의 중심주제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기록된 책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수행할 수 있는 적격자가 누구겠습니까. 다름 아닌 구약에서 어린양으로 예표된 구속자(the Redeemer)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장에서는 인봉한 책의 성격과 관련해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과 유대지파의 사자’로 소개함으로 대속물(ransom)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당위성과 필연성 및 공효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Ⅱ. 전개

요한은 4장의 하늘 보좌 환상을 통해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5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봉인된 책’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4장과 5장은 하늘 보좌 환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속성을 가집니다. 5장에서는 인봉한 책의 정체성, 봉인한 책을 떼기에 합당한 적격자가 왜 어린양이어야 하는가, 유다지파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제 책의 봉인이 떼어졌나 등이 중요한 핵심 주제로 제기된다고 하겠습니다.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 살펴보겠습니다.

1. 봉인(封印)된 책(5:1)

요한은 4장의 하늘 보좌 환상의 연속선상에서 이제 5장을 통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봉인된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됩니다(1절상). 이는 요한이 하나님께서 오른 손에 봉인된 책 한권을 갖고 계신 광경을 환상을 통해 목도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오른 손이란 4장의 보좌와 관련시켜 볼 때, 만물을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권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이런 사실에 동의합니다(출 15:6, 시 17:7, 18:35, 20:6, 44:3, 118:16, 행 2:33, 계 1:16). 이를 오른 손에 갖고 계신 책과 관련시켜 해석한다면 봉인된 책의 내용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역사에 의해 결정적으로 시행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봉인된 책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책은 안팎으로 글씨가 빼곡히 쓰여 있고 게다가 일곱 인으로 봉해지기까지 했습니다(1절하). 이런 상태는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 봉인된 책을 열거나 해석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봉인된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위에서 책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안팎으로 가득 글이 쓰여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해진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구약의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겔 2:9-10입니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 본문에서 언급된 ‘두루마리 책’과 ‘안팎에 글이 있다’는 표현은 계시록 본문의 봉인된 책의 상태와 내용적으로 병행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봉인된 책의 모양은 두루마리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책의 내용은 에스겔 본문의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란 표현을 통해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봉인된 책이 갖는 이런 심판의 이미지는 6장에서 어린양이 책의 인을 뗄 때마다 다양한 심판재앙이 임하는 것을 통해 충분히 입증됩니다. 그러나 봉인된 책의 이미지는 심판의 성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택자의 구원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일곱 재앙심판이 시행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남은 자들의 구원이 ‘흰 옷 입은 큰 무리들’에 대한 삽입환상계시를 통해 도처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봉인된 책의 내용은 크게 구원과 심판으로 분류되면서 복음의 양면을 포함해 하나님의 전 우주적 구속의 경륜을 담고 있는 계시서임을 확증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책이 봉인되었다’는 내용은 의미상 다니엘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봅니다. 몇 구절을 살펴봅니다. 단 8:19입니다.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 단 8:26입니다.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단 12:4입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9입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이상의 다니엘서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환상들은 단 7:13-14을 통해 계시된 인자의 의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왕적 통치를 미래지향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단 8장과 12장에서 이 말을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표현은 문맥상 그 대상이 ‘책’인 사실이 분명합니다. 아울러 ‘정한 때 끝’이라든가 ‘여러 날 후’란 표현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관한 프로그램들이 종말의 성취를 향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실상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다양한 상징과 묵시 및 예언과 약속을 통해 계시된 메시아 대망사상과 관련된 구속의 경륜 속에는 자체 속에 상당한 부분이 비밀로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 신약 기자들의 관점입니다(골 1:26상, 엡 3:5하). 그리고 이런 비밀스런 부분을 담고 있는 구약의 메시아적 복음의 메시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지적입니다(골 1:26하-27, 엡 3:5상).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감춰졌던 복음에 대한 비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성령의 인침과 내주의 사역을 통해 성도 안에 영으로 거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골 1:27, 롬 8:9-11, 갈 2:20, 엡 1:13, 고후 1:22, 고전 3:16, 6:19).

이상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놓인 ‘안팎으로 글이 가득 쓰여 진 봉인 된 책’(5:1상)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상고해 봤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본문이 참고하고 있는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의 배경에 의하면, 봉인된 책의 내용은 창세전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으로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봅니다. 이를 요약하면 봉인된 책의 중심주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시행되는 은혜로운 구원과 공의로운 심판에 집중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관한 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봉인된 책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육신)과 사역(십자가 대속사건)을 통해 이미 성취된 셈입니다. 계속해서 봉인을 떼고 책을 펴는 일과 관련해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의 승리와 죽었던 어린양의 이미지’(5:5-6)를 강조하는 설명이 이런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 해 줍니다.

2. 봉인한 책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5:2-7)

요한은 인봉한 책과 관련해 한 ‘힘 있는 천사’의 등장을 목격합니다(2절). 그의 정체는 확실치 않으나 본 절 외에도 10:1, 18:21에 등장해 중요한 사건을 주도하는 것을 봅니다. 그 천사가 “누가 봉인된 책을 펴며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는 위에서 이미 봉인한 책의 내용과 성격을 확인한 대로, 하나님의 전 우주적 구속의 경륜을 누가 이루어 드리기에 적격자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천사의 질문에 3절은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에 아무도 책을 펴거나 보거나 인을 뗄 수 있는 자가 없음을 선언합니다(3절). 본 절에서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란 표현은 성경에서 우주의 전 범위를 포괄해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하는 형식입니다(출 20:4, 빌 2:10). 다시 말해 우주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어 드릴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책을 펴거나 인을 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에 대성통곡 합니다(4절). 봉인된 책의 중요성만큼이나 누군가가 빨리 책의 인을 떼고 책을 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요한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압박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24장로 중의 하나가 요한을 위로하며 말합니다. 책의 인을 떼고 책을 열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의 말에 요한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책을 열 수 있는 당사자를 단도직입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단 말인가. 왜 천지상간 어디에도 인을 떼고 책을 펼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해서 심한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대성통곡까지 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책을 열수 있는 합당한 자가 있다고 말해야만 했단 말인가. 소위 병 주고 약 주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은 상황의 극적 반전을 통해 메시지를 상대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스토리 전개의 한 기법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도 책을 펼 수 있는 자가 없는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책의 인을 떼고 책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강조함으로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실제로 5-7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수행하심으로 성취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증거합니다(행 4:12).

5-7절은 장로가 말한 대로 누가 유일하게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지를 기술합니다. 2-3절의 절망이 한 순간에 소망으로 반전되는 장면입니다. 다름 아닌 유다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기에 봉인된 일곱 인을 떼고 책을 열 수가 있음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책을 열기에 합당한 자의 명칭이 두 가지로 제시됩니다. 유다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입니다. 첫째, ‘유다지파의 사자’란 칭호는 창 49:8-10에서 야곱이 유다의 미래를 향해 축복한 예언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본 예언에서 야곱은 유다를 일컬어 ‘사자의 새끼’라고 했으며 ‘실로가 오시기까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축복의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은 구약계시 안에서 장차 신정왕국으로 세워질 이스라엘의 명실상부한 왕으로 옹립될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훗날 유다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나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삼상 16:13)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는 다윗 왕에게서 예비적으로 성취되었고(삼하 5:3-5), 참 다윗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됩니다(눅 1:32-33). 둘째, ‘다윗의 뿌리’란 명칭은 사 11:1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와 10절의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의 반영을 나타냅니다. 본 절은 이사야서에서 줄기차게 예언되고 있는 메시아 대망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예언구절로 이새의 뿌리에서 태어날 미래의 메시아가 죄와 악을 멸하고 의와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미래의 왕으로 예언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사야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올 한 싹과 가지’(사 11:1, 10절)로 지칭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새 언약 사상을 통해 ‘다윗에게서 나온 한 의로운 가지’(렘 23:5, 33:15)로 설명합니다. 메시아 관에 대한 두 선지자의 표현은 본질상 동질성을 띱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 예언의 성취는 유다지파의 후손인 다윗의 등극으로 예비적인 성취가 이루어졌고(창 49:9-10), 이제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사 11:1), 곧 다윗에게서 나온 새로운 가지(렘 23:5)에 의해 진정한 메시아가 참 다윗 왕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참 다윗 왕의 신분으로 나타날 진정한 메시아는 누구일까요. 신약성경은 고난의 종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참 후손이요 참 메시아가 되심을 증거합니다(갈 3:16, 마 1:1, 21-23, 눅 1:31-33).

한편 유다의 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란 표현은 혈통적으로 유다지파의 후손이며 참 다윗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승리, 곧 구속사역의 성취를 가리킵니다. 이로 인해 봉인된 책을 열고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으로 지목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봉인된 책의 내용과 성격이 창세전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담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인 사실이 다시 한번 재확인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봉인된 책을 펴는 문제와 관련해 힘센 천사가 질문한 것에 비해, 24장로 중 하나가 유다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책을 펼 것에 대해 답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조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의 인을 떼고 책을 편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속과 구원이 핵심주제일 진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24장로 중 하나가 이 사실을 고한다는 것은 문맥상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입니다(이필찬, 2006, 284-285).

요한은 인봉한 책을 열기에 합당한 분으로 유다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는 장로의 얘기를 듣는 가운데, 보좌와 네 생물과 24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보게 됩니다(6절상). 동일한 예수님을 지칭하면서 ‘사자(the Lion)와 어린양(the Lamb)’의 비교는 극한 양면성을 띱니다. 사자가 승자의 표상이라면 어린양은 속죄를 위해 드려지는 희생양으로 표면상 패배를 함의하기 때문입니다. 본 절에서 어린양 이미지는 유월절 어린양(출 12:3-7, 고전 5:7)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 53:7), 그리고 아사셀 염소(레 16:6-10) 등 속죄를 위해 드려진 희생제물(요 1:29)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예수님에 대한 양극단의 대비와 역설을 어떻게 해석하며 둘의 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는 앞서 설명한 유다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인을 떼고 책을 펴심으로 이기는 자로 합당하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진술하는 것입니다. 곧 어린양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유다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가능했다는 얘깁니다. 이런 사실이 어린양에 대한 묘사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6절중)는 표현을 통해 확증됩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시제상 완료수동형으로 쓰여 졌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지금은 살아계심을 의미합니다. 계 1:18에서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주님의 선언 속에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계 5:9, 롬 4:25),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요 19:30), 현재는 영원하신 중보자로서 십자가의 속죄의 공효를 지속적으로 적용시켜 발휘하심(롬 8:34, 히 7:25)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어린양의 죽음을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어린양이 서 있는 위치에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킵니다(6절중). 어린양은 보좌와 네 생물과 24장로들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상의 보좌와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5장에서 하늘 보좌 환상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요소들입니다. 따라서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 이들 천상적 요소들 곧 모든 피조물의 중심에 위치해 계시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통치의 근간이 되시며 하나님의 구속사를 친히 주도적으로 관장하신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줍니다(골 1:16-17, 엡 1:10, 롬 11:36). 그런 의미에서 4장의 하늘 보좌 환상은 궁극적으로 5장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밝히 증거하기 위한 예비적 조치였음을 간파하게 됩니다(이필찬, 2006, 288).

6절하에서 요한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갖고 있는 어린양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형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계시 속에서 뿔은 막강한 권세와 힘을 상징합니다(삼하 22:3, 시 18:2, 눅 1:69, 신 33:17). 일곱은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함을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곱 뿔이 의미하는 바는 부활승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전하게 성취하신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권세와 능력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뿔에 이어 어린양의 형상에서 발견되는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상징은 슥 4:2에서 성령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설명하는 가운데 여호와의 등불(계 4:5상)로 묘사하다가, 슥 4:6에서 여호와의 신으로, 4:10에서 여호와의 눈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차용된 표현입니다. 따라서 계 5:6에서 성령님을 일곱 눈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으로 설명하는 것은 특별히 성령님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표현으로 파악됩니다. 다시 말해 눈은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슥 3:9, 4:10) 성령께서 신적 편재성과 전지성을 가지고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된 사역을 담당하시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 14:26, 15:26, 16:8, 13-15절, 호크마 요한계시록 주석, 1993, 275).

요한은 7절을 통해 마침내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는 광경을 환상을 통해 목격합니다. 본 절에서 어린양이 책을 취하신다는 것은 바야흐로 봉인된 책의 인을 떼며 책을 펴게 됨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실행의 단계로 옮겨졌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성취시킬 일체의 권위와 권한을 부여받으셨음을 암시합니다. 이를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면 창세전 엡 1:4-6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립된 삼위하나님의 구원협약이 창 3:15의 여자의 후손언약에 근거해 예수님의 초림사건과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음을 함의한다고 보겠습니다. 지금 요한은 창세전 하나님의 오묘한 구속의 경륜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제사역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를 환상을 통한 극적 내용을 통해 해설하고 있는 셈입니다.

3. 네 생물과 24장로와 천사들의 찬양(5:8-14)

요한은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책을 취하시는 것과 때를 맞춰,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양에게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8절). 예배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엡 1:6). 그런데 4:10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는데 비해 5:8에서는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광경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전자의 경우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성과 전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어린양의 구속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가 총론적 관점이라면 후자는 각론적 관점이랄 수 있습니다.

한편 8절은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에게 경배할 때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생물과 24장로 중 누가 이것들을 가지고 어린양에게 나아갔다는 말일까요. 경배의 정황과 성격을 고려해 본다면 24장로의 경우가 문맥상 합당하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24장로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 찬양을 상징하는 거문고와 기도를 상징하는 향이 가득한 금 대접(5:8, 시 141:2)은 교회의 예배정황을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본 절의 어린양께 드리는 예배와 관련해 특별히 ‘향이 가득한 금 대접’ 이미지를 통해 드려지는 성도들의 기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8절하). 왜냐하면 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기도가 일곱 인 재앙을 유발시키는 어린양의 심판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6:9-11, 8:3-4). 상기 두 개의 본문은 인을 떼는 과정에서 소개되는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상기 본문의 기도내용은 적어도 인 재앙 심판과 부분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성도의 기도에 대한 반응으로 인 재앙이 임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죽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앞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신원해 줄 것을 탄원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6:9-10). 또한 8:3-4에서는 익명의 천사가 성도의 기도가 담긴 금향로에 불을 담아 땅에 쏟으매 이것이 심판의 현상인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6-8장에서 시행되는 인 재앙심판은 부분적으로 성도들의 기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이는 5:8하에서 향이 담긴 금 대접 상징을 통해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와도 문맥상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추정하게 됩니다. 특별히 본서가 기록될 당시 일곱 교회들이 처한 상황은 목숨을 담보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어린양에 의해 주도된 각각의 일곱 재앙심판은 부분적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응답의 일환인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16:6-7). 이상의 원리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 본질상 400여년 전에 맺어주셨던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바로의 학정으로 고난 중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했던 것과 동일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출 2:23-25, 이필찬 2006, 293-294).

9-10절은 본격적인 예배의 광경이 새 노래를 찬양하는 것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새 노래는 시편(시 33:3, 40:3, 96:1, 98:1, 144:9, 149:1)에서 종종 사용되는 표현으로 시간적인 성격보다는 질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데 주로 인용되곤 합니다. 따라서 새 노래란 주제가 함의하고 있는 총체적인 성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계시 시대의 도래 곧 새 창조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음을 봅니다. 15:3에 소개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또한 출애굽의 구원사건을 어린양의 구속사건과의 연관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며 경배 드린다는 점에서 본질상 새 노래 속에 담긴 새 창조적 사역과 동질성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구속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어 땅에서 왕 노릇할 수 있는 이유가 새 창조의 시대가 도래 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마 12:28, 벧전 2:9). 9절 중반에서는 새 노래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것은 어린양이 책을 가지시고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란 사실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어린양이 책을 열기에 합당한 이유는 일찍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가리키는 내용입니다. 구속의 결과가 세 가지 측면에서 기술됩니다. 첫째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것입니다(9절하). 이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보편성과 차별성을 동시적으로 가리킵니다. 구원의 보편성이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를 불문하고 전 세계인을 포괄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차별성이란 제한속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속의 공효(effect)는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은 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내용입니다(엡 1:4, 마 1:21, 요 6:37, 65절, 행 13:48, 18:10).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의 사실을 요약하면 세계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예수님의 구속사역 안에서 불러주심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삼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10절상). 이런 표현은 출 19:6에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 언약식을 통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던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집합, 곧 교회공동체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식을 통해 명실공히 구약교회로 출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교회공동체의 진정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말씀의 통치를 적극 받아 누리는 천상적 공동체로 존재한다는 데서 영적 정체성이 확인됩니다. 그러므로 ‘나라’란 구습을 좇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자들로,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천상지향적인 새로운 가치관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포괄해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것은 구약의 배경 속에서 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근거한 새 언약 안에서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셨음을 가리킵니다(히 10:20). 이런 의미에서 신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돼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존재합니다. 성도들이 현재적으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방식은 예배에 직접적인 참여와 복음 전파를 통한 구원의 사역을 담당하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이상의 두 가지 구속의 결과 셋째로 성도가 땅에서 왕 노릇하게 됩니다(10절하). 성도가 왕 노릇한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왕권에 연합돼 예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왕 노릇은 시공을 초월해 하늘과 땅에서 동시적인 사건으로 발생합니다. 소위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선언을 통해 이런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20:4-6). 그런 의미에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이미 현재적으로 왕 노릇하는 자들로 존재합니다. 성도의 현재적 왕권의 발휘는 말씀의 통치를 받으며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천상지향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는 증인의 사역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결과적으로 성도의 왕 노릇하는 삶은 계 22:5에서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란 선언 속에서 최종 성취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본질에서 피조물의 면류관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적으로 수행했었던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왕권(창 1:28)이 승리한 교회공동체를 통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종말론적인 의미의 왕권의 발휘란 회복된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서 창 1:28의 소위 문화명령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성실이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요한은 11-13절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천천만만의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를 목격합니다. 본 절에서 천사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란 표현은 단 7:10의 반영으로 본문에서는 인자되신 심판주를 호위하며 수종드는 수많은 천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구약의 배경에 근거해 본 절(11-13절)은 앞서(8-10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찬양하던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예배가 다른 수많은 천사들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이들 수많은 천사들은 보좌와 네 생물들과 24장로들 뒤에 둘러 서 있는 것을 통해(11절) 보좌와 생물과 장로들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키면서 부리는 영(히 1:14)으로서의 천사의 영적 위치와 사명을 성실하게 담당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들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의 주제 또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성취와 영광과 존귀에 집중됩니다(12절). 천사들에 이어 13절에서는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와 바다 가운데 모든 만물의 찬양이 뒤따릅니다. 이런 표현은 5:3에서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란 표현과 동일한 맥락의 묘사로 곧 모든 피조물을 포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경배를 세세토록 드립니다. 이는 천사들의 찬송과 경배에 대한 화답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동시적으로 드리는 찬양과 경배의 성격은 가히 우주적입니다. 여기서 우주적이라 함은 천지상간의 모든 피조물들이 천상적 예배에 동참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우주적 예배사건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구속사역의 성취의 공효가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종속돼 애매하게 저주받았던 피조물(창 3:17-19)들에게도 미침으로 재창조의 회복을 도래시켰기 때문입니다(롬 8:20-22). 물론 피조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남은 자들의 온전한 구원에 의존돼 있기에 현재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롬 8:19).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성취(요 19:30)는 새 창조의 회복을 이미 가능케 했으며(마 12:28, 눅 17:20-21) 재림으로 온전히 종결될 것입니다(계 22:1-5).

14절은 13절에서의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과 경배에 대한 네 생물의 화답과 24장로들의 경배를 기술함으로 새 창조를 통한 피조물들의 연합과 관계의 회복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아가 이런 사실은 5장 전체의 주제인 인봉한 책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제시와 이를 성취하시는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실행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음을 봅니다. 따라서 피조물들에 의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의 예배드림의 대상은 이 모든 구속의 경륜을 총괄하신 하나님과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에 옮기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의 성취를 택하신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시는 일곱 영으로 묘사된 성령님에게 국한된다는 것이 본서의 기록 의도입니다(엡 1:4-14). 특별히 하늘 보좌 환상을 보여주는 4-5장에서 만물과 만사에 대한 우주적인 통치가 하나님의 보좌에 의해 주관될 때 어린양을 통해 주도되며 이 과정에서 일곱 영으로 표상된 성령에 의해 시행되고 있음이 이런 사실의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확증시켜 줍니다.

Ⅲ. 결론

하늘보좌 환상을 다루고 있는 5장은 4장의 연속선상에서 그 본의를 해석해야 합니다. 4장의 하늘보좌가 우주 만물과 만사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이 된다고 할 때, 5장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해 요한은 종말에 관한 예언과 환상을 담고 있는 다니엘서 12장에 언급된 봉인된 책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다니엘서에서 기술된 종말에 관한 봉인된 책이 계 5장에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열리게 되었음을 요한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서에서 예언하고 있는 종말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사역으로 인해 이미(already) 이 세상 가운데 실현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것(not yet)이라는 이중적 국면을 띠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상의 교회공동체는 이미 현재적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에서 ‘나라와 제사장’의 신분으로 주님의 왕권을 소유해 누리며 발휘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로 인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는 비단 하나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의 회복 또한 가능케 했다는 것이 요한의 관점입니다. 5장에서 천지상간의 모든 피조물(13절상)들이 세세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근거와 배경이 이런 사실을 확증시켜 줍니다(13절하-14절).

이런 관점에서 계 6장부터 시작되는 일곱 인 재앙은 5장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봉인된 책의 인을 하나씩 떼는 사건을 통해 본격적으로 집행됩니다. 따라서 5장은 6-16장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심판재앙 시리즈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는 어린양의 구속사역을 통해 이미 도래한 종말적 심판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시행되는 지를 구약에 배경을 둔 다양한 묵시와 상징적 기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 상대적으로 교회의 영원한 안전과 보장을 강조하는 효과를 나타내게 됩니다. 천지상간의 모든 피조물들을 총칭하고 있는 24장로를 비롯한 네 생물과 천사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세세토록 경배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어린양의 구속사역은 하나님의 종말적 통치가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세상가운데 주권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와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remnant7000
글쓴이 : sky blu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