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계시록2

[스크랩] 요한계시록 구속사(제 6 강) : 일곱 인재앙 시리즈

일곱 인(印) 재앙 시리즈

(계 6:1-17, 8:1-5)

 

 

Ⅰ. 도입

6장의 일곱 인 재앙 시리즈는 16장까지 이어지는 일곱 나팔재앙과 일곱 대접재앙의 기초가 되며, 4-5장에 근거해 본격적으로 계시록의 본론부분을 전개시키는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6-16장에 걸쳐 기술되고 있는 세 종류의 심판재앙 시리즈의 토대가 되는 것이 5장의 주제인 어린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여신 구속사역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로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사건은 5장의 봉인된 책의 인을 단번에 떼시고 여신 유일한 분으로 하나님의 종말적 통치를 친히 주관하시는 결정적인 당사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합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6장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세 일곱 심판재앙 시리즈를 총괄하시는 분으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성취는 세상 가운데 이미 종말을 도래시켰고, 종말은 불가피하게 구원과 심판의 동반을 초래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게 되는데, 6-16장까지의 일련의 심판재앙 시리즈는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마지막 일곱째 대접재앙이 부은바 되는 종말의 날까지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믿음의 정절을 지켜 행하는 것을 통해 시종일관하게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에 근거해 집행되는 것이기에 교회의 종말론적 승리와 완성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보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6장에 소개되는 일곱 인(印) 재앙은 다른 두 재앙인 나팔재앙과 대접재앙과 더불어 어린양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현상이라는 주제 속에서 본질상 동질성과 연계성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 전개와 관련해 세 종류의 일곱 재앙 속에 내재돼 있는 구조적 특성을 먼저 살펴보면서 6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 요한은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재앙 및 일곱 대접재앙을 기술하면서 각각의 내용구성과 전개에 있어서 일정한 규칙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세 심판재앙들이 구조적으로 4+3=7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처음 네 가지 종류에 속하는 각각의 재앙들은 한결 같이 자연계에 임한 우주적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봅니다. 우선적으로 넷(4)이라는 숫자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성을 암시하는 우주적인 성격을 내포합니다. 4-5장에 소개된 하늘보좌 환상에서 네 생물이 자연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일곱 인 재앙에서는 네 마리의 각기 다른 색깔의 말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면서 땅에 참혹한 전쟁과 기근을 불러일으킴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살육(殺戮)과 살상(殺傷)이 벌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6:1-2, 3-4, 5-6, 7-8). 이런 비극적 참상으로 땅의 사분의 일이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일곱 나팔재앙에서는 자연계를 대상으로 처음 네 종류의 심판재앙이 땅과 바다와 강과 샘 및 하늘에 임함으로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was struck) 자연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큰 혼란을 야기 시킵니다(8:7, 8-9, 10-11, 12-13). 일곱 대접재앙은 본질상 나팔재앙과 동일한 성격을 띠면서 땅과 바다와 강과 각종 물의 근원과 해에 쏟아짐으로 자연계에 일대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16:2, 3, 4-6, 8-9). 이상의 사실들은 세 일곱 재앙들이 시간적으로 연속성을 띠고 있다기보다는 상호간 반복되고 중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반면에 나머지 세(3) 종류의 심판재앙들은 인 재앙과 나팔재앙에서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각각 독립적으로 시행되는데 반해, 대접재앙은 공통적으로 용과 두 짐승 및 이들과 관련된 짐승의 보좌와 공중에 집중됨으로 상호 동질성을 띠며 나타납니다. 먼저 인 재앙에서는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드리는 기도(6:9-10), 천지개벽(天地開闢)적 현상(6:12-17), 성도의 기도상달 및 뇌성, 음성, 번개와 지진(8:1-5)이 소개됩니다. 나팔재앙은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의 해코지(9:1-12), 유브라데에 결박당한 네 천사들로 말미암은 전쟁발발(9:13-21),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한 천상의 24장로들의 찬양과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11:15-19)을 수반합니다. 대접재앙은 짐승의 보좌(16:10-11), 아마겟돈 전쟁(용과 두 짐승의 멸망, 16:12-16), 용의 본부인 공기(공중)가운데 대접을 쏟음과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큰 지진(16:17-18)을 동반합니다.

 

둘째는 삽입환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삽입환상은 특별히 일곱 인 재앙과 나팔 재앙과 관련해 각각 여섯 번째(7:1-17)와 일곱 번째(10:1-11:13) 사이에 주어지면서 앞뒤 장의 문맥을 연결시킴으로 문학적 효과를 상승시킵니다. 말하자면 7장에 소개된 144,000명의 인(印)맞은 자와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관한 삽입환상 기사는 6:17의 심판적 선언(6장의 인재앙)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동일한 원리 속에서 10장의 작은 책을 먹은 요한과 11장의 두 증인 삽입환상 기사는 9:20-21의 심판적 선언(8-9장의 나팔재앙)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11:13). 곧 회개의 동인(動因)은 물리적인 심판이 아니라, 교회의 복음증거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창 8:20-21). 반면 16장에 기술된 대접재앙과 관련해서는 회개와 구원을 촉구하는 별다른 삽입환상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4장 후반부에 소개된 종말적 구원과 심판의 내용에 근거해 15장이 도입되면서 16장에서 마지막 심판재앙의 성격을 띠고 대접재앙이 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5:1). 이는 더 이상의 회개와 구원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마침내 구속사의 종결인 하나님의 종말의 심판이 대접재앙을 통해 다가온 셈입니다.

 

셋째는 세 종류의 각각의 일곱 번째 재앙과 관련해 동일한 종말적 심판현상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메릴 C.데니, 37). 세 종류의 일곱 번째 재앙과 함께 선언되고 있는 종말적 심판현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곱 번째 인 재앙과 관련해서는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뒤따릅니다(8:5). 일곱 번째 나팔재앙과 관련해서는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떨어집니다(11:19). 일곱 번째 대접재앙과 관련해서는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큰 지진과 큰 우박”이 내립니다(16:17-21). 이런 현상은 다분히 구약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하심과 출애굽 사건을 도모하기 위해 애굽 전역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이미지와 깊이 연관돼 있음을 봅니다. 요한은 구약의 심판재앙과 관련해 사용되었던 다양한 현상들을 차용해 종말적 심판의 도래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이런 종말적 현상과 관련해 계시록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심판의 발원지가 다름 아닌 하늘보좌란 사실입니다. 요한은 4장의 하늘보좌 환상을 통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울리는 것을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4:5). 이는 우주만물과 만사의 통치와 운행의 중심에 하늘보좌가 있음을 강조함에 다름 아닙니다. 심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롬 11:36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넷째는 각각의 일곱 번째 재앙이 다음 재앙을 도입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일곱 번째 인 재앙을 통해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소개되고(8:1-2), 일곱 번째 나팔재앙을 통해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가 소개되는 것을 통해 확인됩니다(11:15, 15:1). 나아가 이런 현상은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이 근본적으로 일곱 인 재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는 세 심판재앙들이 본질상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철저하게 관장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시합니다. 요 5:22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행 17:31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적극 주관되고 시행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다섯째는 인재앙으로부터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으로 진행될수록 재앙의 강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이필찬, 313). 이런 현상은 몇 가지 내용을 통해 확인됩니다. 먼저 재앙의 범위를 언급하는 내용과 관련해 인재앙에서는 ‘사분의 일’(6:8)이란 표현이 나팔재앙에서는 ‘삼분의 일’(8:7-12)로 범위가 훨씬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각각의 일곱 번째 재앙에서 언급되고 있는 종말적 심판선언의 내용이 마지막 대접재앙으로 진행 될수록 강도가 강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끝으로 대접재앙을 일컬어 마지막 재앙이라고 강조한다는 사실입니다(15:1). 이런 사실은 인재앙과 나팔재앙이 전체적으로 자연계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 대접재앙의 경우 특별히 마지막 세 재앙(5-7째)은 철저하게 사단과 관련된 대상들에 집중적으로 내려지고 있음을 봅니다.

 

여섯째, 특별히 다섯 번째에 소개된 내용들을 통해 발견되는 점은 각각의 세 재앙들이 시간적인 연속성을 갖기보다는 반복적이며 중첩적인 특징을 띠는 가운데 재앙의 강도가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세 심판재앙에 담긴 구속사적 의미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사역으로 성취되고 도래한 현재적 종말이 미래지향적으로 완성의 절정을 향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심판과 구원의 실질을 구약에 배경을 둔 다양한 묵시와 상징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 일곱 심판재앙은 예수님의 초림과 더불어 이미 현재적으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으로 최종 마감될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구속사적 역사관과 성경적 가치관의 확립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사를 통찰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세상역사의 본질은 구속사요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늘보좌를 중심으로 오늘도 여전히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통치되고 관장되기에 말입니다. 이상의 사실들에 근거해 먼저 6장에 기술된 일곱 인 재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Ⅱ. 전개

 

일곱 인 재앙은 5장에서 일곱 인 봉한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어린양에 의해 총괄적으로 주관되는 가운데,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경배했던 네 생물들에 의해 도입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네 생물의 등장은 이들에 의해 곧 시행될 네 말 탄자들에 의한 심판재앙들이 주로 자연계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네 생물의 정체성은 자연계의 피조물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4-5장을 통해 살펴본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인 재앙심판은 내용의 성격상 4+3(1+1+1)=7이라는 공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처음 네 재앙은 자연계의 피조물들에 집중되면서 주로 전쟁과 기근과 사망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나머지 셋은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재앙의 성격을 띱니다.

 

1. 네 가지 인 재앙(6:1-8)

 

인 재앙은 나팔재앙과 대접재앙과 더불어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성취로 이미 도래하게 된 종말적 심판의 일환으로 주어지는 현상들입니다. 따라서 재앙들이 쏟아지는 기간은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전 교회시대를 포괄합니다.

 

일곱 인 재앙은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것과 동시에 시작됩니다(6:1). 이는 심판의 주체가 어린양이시며 심판의 내용 또한 어린양의 뜻에 의해 관장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그 때에 요한은 네 생물들이 각각 차서를 따라 ‘오라’(come)고 외치는 우레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소리에 맞춰 네 말 탄자들이 순서대로 출현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물론 이런 광경은 네 종류의 심판재앙이 시대별, 시간별로 순서를 따라 세상 가운데 임할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그렇게 연출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재앙들이 동시적이며 반복적이고 또한 중첩적으로 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남아에서는 홍수피해가 극심한데, 같은 시간 유럽에서는 기상이변으로 막대한 폭설피해가 발생하며, 동시에 중동에서는 종교적인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속출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본 장에서 처음 네 인 재앙을 유발시키면서 등장하고 있는 네 마리의 말은 스가랴서 1:8-11(말 탄자의 묵시)과 6:1-8(네 병거 묵시)을 배경삼아 기술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스가랴서에 소개된 두 상징적 사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적 징계를 위해 도구 삼았던 이방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요한은 위의 두 상징 속에 함의돼 있는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조합해 본서의 종말적 심판에 맞게 재구성한 셈입니다.

 

먼저 어린양이 첫째 인을 뗍니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고 우레처럼 말합니다. 이때 요한은 흰 말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고 요한은 기술합니다(6:1-2). 본 절의 흰 말 탄자의 등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전쟁의 승리자요 정복자란 사실입니다. ‘흰 말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기고 또 이기려한다’는 표현이 이런 사실을 한층 확증시켜 줍니다. 특별히 ‘이기고 또 이기려한다’는 표현은 말 탄자의 전쟁에 대한 집착과 정복욕이 끝이 없음을 시사합니다. 사실 이런 속성은 본질상 사단적인 것에 훨씬 더 부합된다고 하겠습니다(계 20:7-10). 물론 흰 말 탄자의 정체는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른 네 말 탄자의 등장과 자연계를 대상으로 한 네 인 재앙의 성격상 동질성과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혹자들처럼 본 절에서 말 탄자의 정체를 적어도 19:11에 등장하는 백마 탄자와 동일시하려는(윌리암 헨드릭슨, 1981, 110/유도순, 2005, 145) 시도는 주의를 요합니다. 외부적인 유사성에 근거해 문맥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되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묵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19장의 백마 탄자는 문맥상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두 짐승을 잡아 불못에 던질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19:19-21). 그러나 6장에서 등장하고 있는 흰 말 탄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자의적으로 행동하지도 못합니다. 흰 말 탄자는 ‘오라’는 네 생물 중 하나의 부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 또한 어린양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을 집행하는 데 흰 말 탄자가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사단의 세력 또한 필요악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잠 16:4). 환언하면 하나님의 구속사가 세상역사를 무대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단과 그의 세력들도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데 부정적 관점에서 나름대로 일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왕상 22:20-23, 욥 1:12, 2:6, 행 2:23, 4:27-28). 따라서 6장의 흰 말 탄자는 적어도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 세력들을 총체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순태, 2002, 139/장수민, 1999, 96).

 

어린양이 둘째 인을 떼십니다(3-4절). 때를 맞춰 둘째 생물이 오라고 외치자 붉은 말이 나오면서 그 말을 탄자가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합니다. 이는 전쟁과 살육의 극심함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땅의 도처에서 평화와 안녕이 사라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더구나 붉은 말 탄자가 ‘큰 칼을 받았다’는 것은 흰 말 탄자가 ‘활을 가진 것’과 동질성을 띠는 것으로 전쟁과 살육이 지속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붉은 말 탄자가 수행하고 있는 전쟁과 살육을 도모하는 심판행위가 ‘허락’을 받아서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종말적 심판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속에서 섭리적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증시켜 줍니다. 그것은 동시에 심판의 불가피성을 증거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는 경고의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간주하는 말씀(요 3:18)과 더불어 심판의 의미를 보다 포괄적으로 확대해석해서 적용시킬 필요가 있음을 함의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종말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를 기점으로 현재적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종말의 시기와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해 주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주님은 종말의 시기 및 징조와 관련해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한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각종 난리와 전쟁의 소문 그리고 기근의 발생 및 일월성신의 징조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마 24:3-35). 이런 관점에서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종말의 징조는 다름 아닌 계시록의 세 일곱 재앙의 내용 및 성격과 유사성을 띠면서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종말적 심판현상은 예수님의 초림을 시발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 교회시대야말로 또 다른 의미에서 종말의 시대란 사실이 재확인된 셈입니다.

 

어린양이 셋째 인을 떼십니다(5-6절). 이때 검은 말을 탄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와 동시에 네 생물 사이에서 나는 듯한 “한 데나리온의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본 음성은 네 생물이 둘러서 있는 하늘 보좌 곧 하나님이나 어린양께서 발하신 음성일 가능성이 큽니다. 심판의 주도권이 하나님과 어린양에 의해 관장되기에 말입니다. 검은 말 탄자의 손에 들린 저울은 문맥상 밀과 보리를 도량하는 일과 연관돼 있음을 파악하게 됩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화폐가치입니다(마 20:2). 밀 한 되의 양은 한 사람의 하루치 식량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보리 석 되는 세 사람의 하루 식량에 해당되는 분량인 셈입니다. 그러나 당시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의 값이 한 데나리온이라는 사실은 보통 시세의 12-16배에 해당되는 높은 값입니다(호크마 종합주석, 1993, 291).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지속적인 전쟁과 살육의 여파로 심각한 기근현상이 초래돼 자연히 곡물류의 값이 상상외로 올랐음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이런 심각한 기근에도 일상식품으로 분류되는 감람유와 포도주(신 11:14, 호 2:8, 22절)를 해치 말라고 제한하심으로 본격적인 심판재앙은 아직도 유보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로 보건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전쟁과 기근 및 천재지변으로 인한 다양한 재앙들은 표면상 단순히 인재(人災)나 자연재해의 차원을 넘어 본질상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린양이 넷째 인을 떼십니다(7-8절). 넷째 생물이 오라고 외치자, 요한은 사망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청황색 말을 타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음부가 그 뒤를 따릅니다. 여기서 사망은 죽음의 심판을 의미하며 음부는 사망을 가능케 하는 죽음의 권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최후의 백보좌 심판에서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짐을 받게 된다”(계 20:14)는 선언은 일종의 의인화된 표현으로 더 이상 죄로 말미암는 사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망을 가능케 했던 음부의 권세 또한 그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음을 강조한다고 하겠습니다. 넷째 인 재앙의 결과로 청황색 말 탄자가 땅의 사분의 일을 해칠 권세를 부여받았음을 봅니다. 이는 인 재앙이 우주적이면서도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세상을 보존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보존의지는 노아의 보존언약과 이를 확증해 주는 무지개언약을 통해 확인됩니다(창 9:12-16). 이런 사실은 계 4:3에서 하늘 보좌에 둘려져 있던 무지개를 통해서도 암시되고 있음을 확인한바 있습니다. 한편 본 재앙으로 인한 환난의 방편들은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방편들은 예루살렘에 내려질 심판예언을 담고 있는 겔 14:21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앞의 세 인 재앙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재앙의 정도가 앞의 세 인 재앙의 내용보다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봅니다.

 

2. 나머지 세 인 재앙(6:9-17, 8:1-5)

 

6장에 언급 된 일곱 인 재앙 중 처음 네 재앙은 네 마리 말 탄자에 의해 세상 곧 자연계에 임하는 재앙으로서 성격상 동질성을 띱니다. 반면에 나머지 세 인 재앙은 내용상 독립성을 띠면서 개별적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어린양이 다섯째 인을 떼십니다(9절). 동시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 환상”을 봅니다. 물론 본 환상 자체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순교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향해 믿음의 정절을 지킨 자들로 곧 순교자들을 총칭해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서의 1:9이나 20:4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란 표현과도 내용상 동질성을 띤다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들이 ‘제단아래 있는 영혼들’로 묘사되는 것은 이들의 현주소가 하늘 보좌 환상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요,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로 간주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죽은 성도들을 가리킬 때 한결 같이 ‘영혼들’이란 용어로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6:9, 20:4). 이런 묘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된 성도들의 삶이란 지상과 천상을 막론하고 본질상 영생하는 삶을 누리는 자들로 존재하고 있음을 강력히 증거합니다(요 5:24, 11:25-26). 이들 순교자의 영혼들이 거룩하고 참 된 대주재자 곧 하나님께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큰 소리로 간구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거룩하고 참 된 대주재자로 호칭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성과 신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요구는 사단에 속한 무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순교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낸 악의 세력들을 총칭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순교자들의 신원(伸寃)의 요구는 일종의 인과응보적인 성격을 띤다고 하겠습니다.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요구하는 심판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이미 네 인 재앙심판이 앞서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신원을 위한 보응(報應)적 심판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순교자들의 신원(伸寃)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두 심판 간의 진상이 확인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심판 요청에 추가적인 순교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기다릴 것을 당부하십니다(11절하). 이는 또 다른 믿음의 정절 자들의 순교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된 남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속적인 복음전파의 필요성이 요구된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순교자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순교자들이 요구하는 심판은 자연히 최후의 심판과 깊이 연관돼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앞의 네 인 재앙심판에 이어 다섯 째 인 심판재앙과 관련해 순교자들의 기도가 언급된 이유가 이런 사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결국 ‘잠시 기다리라’는 응답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지연의 의미는 마지막 한 사람의 택자가 구원의 은혜를 입기까지 최후의 심판은 보류되다가 마침내 정하신 때에 틀림없이 시행될 것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명인 셈입니다. 요한은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의 영혼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을 환상을 통해 목격합니다(11절상). 본 절에서 ‘흰 두루마기’란 본서에서 ‘흰 옷’과 동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례로(3:4-5, 4:4, 7:9, 13-14, 19:14),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말미암아 보장된 구원과 칭의의 확고부동한 보증과 약속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십니다(12절). 이 때 큰 지진이 뒤따르며 하늘의 일월성신과 땅과 바다가 흔들리는 가운데 천지상간의 위계질서에 일대 혼란이 야기됩니다. 곧 우주적 붕괴와 격변현상이 초래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섯째 인 재앙심판 현상은 가히 우주적이며 다양한 묵시적인 표현과 상징들로 묘사됩니다(12-14). 이런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종말적 심판광경과 현상을 증시하기에 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종말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마 24:29-30, 벧후 3:10).

 

여섯째 인 재앙을 기술하고 있는 본문(12-17)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2-14절은 심판재앙의 현상을, 15-17절은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먼저 심판재앙 현상입니다(12-14절). 심판재앙 현상에서 큰 지진과 천체의 흔들림은 구약을 배경으로 한 상징적이고 묵시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현현하심으로 인한 종말적 심판과 밀접하게 연관돼 사용되곤 합니다(삿 5:4-5, 욜 2:10, 겔 38:19, 마 24:7). 천체의 요동과 관련해 계 6:12하의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는 요엘서 2:31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를 배경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본문은 내용상 상당이 유사성을 띠면서 상호 병행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봅니다. 나머지 계 6:13-14은 사 34:4과 유사한 병행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나중 두 본문에서도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과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가 서로 병행을 이루고 있으며, ‘하늘이 종이 축과 같이 말린다’는 표현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본서의 다른 환상들이 그렇듯이 천체의 종말적 이상 징후들을 묵시적이며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의 종말적 심판현상들은 재림의 시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 확실하지만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종말이 임한 사실을 고려할 때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에 적용될 수 있음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여섯째 인 재앙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15-17절). 본 절에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땅에 속한 일곱 계층의 사람들을 망라해 기술합니다. 특별히 ‘땅의’(14절상)라는 표현은 본서에서 ‘하늘’과 대비되는 용어로 용과 짐승을 추종하며 경배하는 자들과 연관시켜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13:3, 8, 12, 14절, 14:6, 17:2, 8절). 이런 사실은 이들의 정체성이 하늘에 속한 교회공동체와는 본질상 다른 것으로 심판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촉구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이들의 부정적인 정체성과 태생적 속성으로 인해 천지개벽 같은 종말적 심판재앙에도 불구하고 두려워 떨면서 피할망정 결코 회개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자신들을 가려달라고 외칠 뿐입니다(16절). 회개 않는 화인 맞은 양심은 용서와 구원의 기회마저 상실합니다. 무서운 진노와 심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본문(16절)은 하나님께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을 집행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공정한 심판 앞에 더 이상의 은혜와 자비의 기회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을 통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오랜 기간 참으셨습니다(벧후 3:9). 그러나 무한정은 아닙니다(고후 6:2). 섭리적 작정의 기간이 차면 구원의 은혜는 마감됩니다. 구원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이런 이유로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심판은 무자비합니다(계 20:13-15). 따라서 17절의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저자의 보충적 질문은 이상의 하나님의 무자비한 종말적 심판과 깊이 관련된 표현인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무자비한 심판 앞에서 누가 피할 수 있으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란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어서 주어진 7장의 삽입환상은 다름 아닌 6:17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주어진 내용임을 간파하게 됩니다. 문학적 구성상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서 말입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십니다(8:1). 일곱째 인은 여섯째 인 재앙이 마친 후(6:17), 7장의 삽입환상을 지나 8:1-5을 통해 속행됩니다. 본 절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앞의 여섯 가지 인 재앙과는 달리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직접적인 재앙이 임하지 않고 오히려 일곱 나팔재앙이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이 성격상 밀접한 상호 연관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상 반복적이며 중첩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시위한(서서 수종드는)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는 것을 봅니다. 이는 일곱 인 재앙에 이어 일곱 나팔재앙 또한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간접적으로 증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은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다’고 기술합니다(8:1하). 이는 마치 폭풍전야의 짧은 고요함을 뜻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3-5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도응답에 대한 종말적 재앙의 긴박감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함인 듯합니다(호크마 종합주석, 325). 일곱 나팔재앙이 임하기 전에 한 다른 천사가 등장합니다(3절상). 여기서 다른 천사란 앞의 일곱 나팔을 가진 천사의 등장과 차별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다른 천사가 나타나 두 가지 일을 수행합니다. 하나는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 곁에 서서 많은 향을 받습니다. 향을 피우기 위함입니다. 이제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올라갑니다(4절). 이런 장면은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지성소 앞에 놓인 금향단에 향을 사르던 예표를 통해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의 임무는 천사가 향을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습니다(5절상).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로 특별히 겔 10:2-7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베옷 입은 사람을 향해 ‘그룹 및 바퀴 사이’에서 취한 숯불을 하나님께 범죄 한 성읍인 예루살렘을 향해 흩으라고 명하십니다(겔 10:2). 이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겔 10:7에서는 베옷 입은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심판을 시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계 8:5에서 ‘단 위의 불’이란 번제단의 불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번제단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여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대속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속죄양이 죽임을 당하는 곳이 다름 아닌 번제단입니다. 속죄양의 죽음을 통해 죄가 속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제물을 드린 자 대신 어린양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어린양의 속죄의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고 거부한다는 것은 곧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이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향연이 하나님께 올라감과, 향로에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쏟는 천사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 밝히 증거해 줍니다. 성도의 기도가 심판을 초래케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말입니다(6:10, 8:3-5, 16:5-7). 이런 결과는 곧 바로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을 유발시킵니다(5절하). 이런 현상은 이미 계 4:5에서 살펴본 대로 종말적 심판현상과 동일한 맥락에서 발생되는 것이며, 이는 본서의 언급된 제반 종말적 심판이 하늘 보좌 곧 하나님에 의해 섭리적으로 주관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곱째 인 재앙심판이 일곱 나팔재앙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8:1-2)은 일곱째 인이 떼어짐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골 1:27, 엡 1:7-10)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믿지 않고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함을 증거하는 결과를 초래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곱째 인을 떼심으로 열려진 인봉했던 구속의 경륜에 관한 비밀의 책(5:1)은 후에 요한(교회를 대표함)이 먹은 ‘작은 책’과 본질상 동일한 책으로 교회의 복음전파 사명을 통해 적극 요구됩니다(10:11).

 

Ⅲ. 결론

 

6장에 기술된 일련의 인 재앙 시리즈는 5장의 주제인 일곱 인봉한 책을 여시기에 합당한 어린양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종말적 심판의 일환으로 소개됩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의 초림사역이 세상 가운데 이미 종말을 도래시켰으며 동시에 종말적 심판과 구원의 역사 또한 시행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줍니다.

일곱 인 재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처음 네 재앙과 나머지 세 재앙으로 구분됩니다. 처음 네 재앙은 네 말 탄자들에 의해 수행됩니다. 재앙의 대상은 자연계를 포함해 세상을 목표로 삼습니다. 재앙의 내용은 주로 전쟁과 기근과 살상이 주류를 이룹니다. 나머지 세 재앙은 순교당한 영혼들의 기도로 시작해(9-10)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마감됩니다(8:1-5). 이때의 기도응답은 보다 강화된 종말적 심판현상을 촉진시킵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성격이 본질상 성도들이 당한 핍박과 환난과 고난을 그렇게 행한 가해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신원(伸寃)의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체에 대이변이 속출하며 지각에 큰 변동이 초래됩니다. 한마디로 천지개벽적인 대 격변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종말적 심판의 성격이 성도들의 기도응답의 일환으로 주어지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가 제반 심판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줍니다.

 

특별히 여섯째 인 재앙과 일곱째 인 재앙 사이에 삽입환상(7장)이 주어지며 일곱째 인 재앙 기사는 8:1-5에 걸쳐 소개됩니다. 여기서 7장에 소개된 이마에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삽입환상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 재앙심판이 집행될 때라도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신구약 시대의 모든 교회공동체는 절대 안전하게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때의 구원과 보호는 인 재앙의 피해와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재앙의 피해를 받을지라도 종말론적인 구원이 철저하게 보장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일곱째 인이 떼어지는 것과 동시에 일곱 나팔을 받은 일곱 천사가 소개됩니다(8:1-2). 이는 일곱째 인 재앙이 일곱 나팔재앙을 도래시키는 것을 가리키며 동시에 일곱 대접재앙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어린양의 구속사역의 결과로 도래하게 된 종말적 심판 시리즈의 일환으로 말입니다.

출처 : remnant7000
글쓴이 : sky blu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