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 [Churches of Christ, Christian Churches]
미국에서 생성된 교파. 1807년 장로교 출신인 토마스 캠벨(Tomas Campbell)이 주창한 ‘환원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환원운동이란 초대교회, 즉 신약에 나오는 사도들의 교회로 돌아가자는 신앙운동인데,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인위적 신조나 전승’들은 거부하였다. 신앙인들의 침례를 주장했고, 개체교회 이외의 어떤 교회적 권위도 부인했다. 주일마다 성만찬을 베풀었고, 보편적 교회를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인 연합운동에는 적극적이었다. 교직에도 목사나 장로와 같은 칭호가 아닌 형제, 제자, 그리스도인과 같은 보편적 용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침례를 주장한 관계로 개혁주의적 침례파와 연합했으나, 1827년 침례파와 결별하고 ‘제자파’(Disciples)라는 독립적인 조직을 갖게 되었다. 1831년에 같은 취지의 신앙운동을 벌이던 서부의 스톤(B. W. Stone)이 이끄는 그리스도 교회(Christian Churches)와 연합하였으며, 이 무렵부터 활발한 전도활동을 벌여 교회가 늘어났다. 특히 토마스 캠벨의 아들인 알렉산더 캠벨은 개인잡지 <Millenial Harbinger>를 통해 환원운동을 선전하였고 베다니대학을 설립,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다. 1849년 첫 번째 총회가 열렸고 이때 자원 전도인들로 구성된 미국 그리스도선교회(American Missionary Society)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진보적 경향과 보수적 경향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고 결국 1906년에 둘로 나뉘었다. 보수적 교회는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무악기파’ 그리스도의교회(Churches of Christ)로 불리게 되었고, 진보적 교회는 ‘유악기파’ 그리스도의교회(Disciples of Christ 혹은 Christian Churches)로 불렸다. 무악기파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며 성경이 규정하지 않은 어떠한 교회 조직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유악기파는 보다 현실적인 선교정책을 갖고 교회 확장에 임했고, 1917년 캐나다와 연합으로 국제그리스도의 제자파총회(International Convention of Christian Churches)로 바꾸었다. 이 조직은 미국 NCC 및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되어 있다.
1927년 유악기파 그리스도의교회가 또다시 분열했는데, 다른 교단에서 들어오는 비침례교인의 허입문제를 놓고 개방 입장과 보수적 입장이 나뉘어 보수적 교회들이 북아메리카 그리스도인 총회(North American Christian Convention)를 조직한 것이다. 보수적 교회는 ‘독립파’(Independents)로, 개방적 교회는 ‘협력파’(Coperativers)로 불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교회는 극단적 보수주의 무악기파(Churches of Christ), 중립적 독립파(Christian Churches) 및 개방적 협력파(Christian Churches, 혹은 Disciples of Christ) 등 셋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무악기파를 제외한 협력파, , 독립파 그리스도의교회는 1930년에 창설된 세계그리스도의교회총회(World Convention of Churches of Christ)를 통해 상호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1985년 현재 세계 그리스도의교회 신도수는 8,783,200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그리스도의교회의 성립과정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동석기(董錫祺)ㆍ강명석(姜明錫)ㆍ성낙소(成樂紹)목사 등에 의해 ‘환원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1937년 성낙소목사의 주선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체이스(J. Chase)선교사가 내한, 그리스도의교회 교리강습소를 설치하고 전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말기의 시대적 상황으로 선교성과가 크지는 못했다. 다만 각 지방마다 몇몇 기도소가 개체교회적 독립체제(Local Autonomy)를 유지하며 명백을 유지했다. 해방 후 1947년 체이스선교사가, 49년 5월에 힐(J. Hill)선교사가 재내한하면서 교회 재건이 시작되었으나 6ㆍ25사변으로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51년에 ‘한국그리스도의교회 교역자회’가 조직되고 김재순(金在順), 함창현(咸唱泫), 장주열(張周悅), 최요한(崔要漢), 이 신(李信) 등이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써 한국그리스도의교회 성장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특히 초대 교회의 순수한 신앙모습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의 지속적인 전개와 ‘성경연구회’의 조직을 통한 성경이해와 교리공부는 그리스도의교회운동의 신앙적 바탕을 튼튼히 했다. “우리는「한국그리스도의교회」가 한국인에게 들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한국인의 자각(自覺)있는 신앙과 이해(理解)에 의해서 세워져야 할 것을 믿는다.” 이런 내용이 중심이 된 ‘한국그리스도의교회선언’이 1974년 3월 25일에 발표되면서 보다 성숙된 선교운동이 진행되었다. 유악기파와 무악기파로 크게 구분되는 한국에서의 그리스도의교회 운동은 외형적 체제와 내면적 신념이 안정된 가운데 발전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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