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동양전래 -경교편
1. 경교(景敎, Nestorius파)
⑴ 네스토리우스(Nestorius)
그는 428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교회의 감독 이었다.
그는 기독론에 대한 이견(異見)으로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정죄되고 파문되었다.
그리고 451경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226-637) 하에서 발전하여 에데사(Edessa)→니시비스(Nisibis)→바그다드(Bagdad)로 확장되어 신학교와 수도원을 세웠고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네스토리우스
시리아-네스토리안 기독교인들의 비석
⑵ 중국 전래와 발전 (635-845)
* 당(618-907) 태종 때(635)에 알로펜(Alopen, 阿羅本)을 선교단장을 하여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은 장안에 와서 포교를 시작했다.
그들은 파사교(波斯敎), 대진교(大秦敎), 경교(광명정대한 종교), 대진경교라고 칭했다.
대진사라고 하는 교회를 세웠고 그 사제들은 대진승이라고 칭했다.
예수 메시아경, 일신론, 일천론, 세존포세론 등을 번역했고, 장안 외에도 낙양, 영무, 사주, 성도, 광주에 선교를 하여 번성했다.
* 고급 경전으로 大秦景敎宣元本經, 志玄安樂經 經敎三威蒙度讚尊經 등을 번역하였다.
*
781년 대진경교중국유행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장안에 건립하였는데 그 내용에는 경교의 약사, 경교의 진리, 경교인의 모습, 신앙생활 내용(7일중 하루 예배, 목탁사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도교를 숭상하든 무종이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 선포한 회창멸법(會昌滅法, 845)으로 인해 탄압을 받고 쇠퇴했으니 재산은 국가로 귀속되고 경교승은 환속되었다.
대진경교유행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경교삼위몽도찬존경(經敎三威蒙度讚尊經)
삼위 하나님을찬양하는 경전 1908년 돈황석굴에서 발굴
7-8세기 경교교회 벽화로서 종교주일에 행진하는 경교사제들의 모습
몽고인 경교 주교 벽화 - 돈황석굴에서 출토
몽고시대의 경교십자가
⑶ 경교의 신라(BC 57-953 통일 668) 전래 가능성
1) 근거
통일신라는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사절, 유학생, 상인,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과의 교역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 예로 처용(處容)의 전설이 전해진다.
처용은 울주 지역에서 온 해신 일곱 중에 하나이다. 해신으로 표현된 그 존재가 무엇이냐?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간 모습을 보고 귀신같이 보여서 아라비아 상인들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페르시아나 아라비아 같은 곳에서 처용가에 나타나듯이 이 때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종교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하는 것이다.
2) 제기
영국의 여류 역사학자 고든(E.A. Gorden- The symbols of the Way, Toyo, 1916; Asian Christology and the Mahayana, Tokyo, 1921)이 처음으로 경교의 한국전래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 증거로
- 석굴암의 신장, 십일서관음상(十一西觀音像), 나한상/ 12支像 / 무인상의 옷무늬와 신발과 유리장식 등이 페르시아의 것으로 경교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한다.
- 1917년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의 모형이 금강산 장안사에서 발견되었다. (혹자는 고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 1956년 불국사(佛國寺)에서 석제(石製)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Piesta)을 발견하였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 (1956년)
십자무늬장식(8-9세기 통일신라)
3) 발전:
김광수는 「동방 기독교사(東方基督敎史)」에서 경교의 모조비(模造碑)에 관하여 언급하며, 이조(李朝)의 헌종(憲宗) 때의 이규경(李圭景)이 쓴 「오주연문(五州衍文)」의 한 구절에 경교를 알고 있음이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김양선은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서 통일 신라 이후 능묘 제도(陵墓制度)의 특색이 되어 있는 호석(護石)에 부조(浮彫)된 12지상(支像)과 능묘 앞에 배치된 페르시아의 무인상 등이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김득황(金得榥)은
「한국 종교사(韓國宗敎史)」에서 경교가, 불국사가 건축된 해인 751년 이후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
오윤태는 「한국 기독교사 1」에서 석가 사후 400년에 소승불굑 약화될 시기에 인도북방에 도마의 전도로 기독교가 왕성해 지면서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분리를 184년경으로 보았다. 한국에 들어온 불교는 기독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 미륵불(彌勒佛),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예수라는 것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2. 원(元, 1234~1367)나라 때의 야리가온(也里可溫) 과 로마가톨릭: 고려(918~1392)
⑴ 몽고족의 세계제국 건설: 종교와 사상의 포용성
돌궐 계통의 위구르 등은 시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흡수했다.
그들은 몽고를 통해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중국에 전파했다.
이들 기독교도들을 야리가온, 아이개온(阿爾開溫)이라고 했는데 몽고어 아리카운(Arikaun, Arcoun,
복음을 섬기는 자)에서 유래했다.
징기스칸은 Kerart족 공주(기독교신자)를 아내로 맞았다. 몽고 수도에 Kerart 출신의 야리가온들이
있었고, 궁중 안의 3만의 경호원들은 Alains족의 기독교도들로 조직했다는 설이 있다.
⑵ 고려에 선교 가능성
김양선 등은 몽고 왕실과 고려와의 깊은 관계(몽골의 고려침략, 1231-60, 그후 100년간 친교) 및 왕세자가 베이징에 가서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충렬왕, 충선왕 등이 출현한 것으로 보아 그 선교가능서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고려인들은 몽고 및 원나라 수도에 이주했다.
몽고군와 고려군이 일본정벌 연합군을 결성했는데 몽고군 중에는 야리가온이 많았다.
그러나 이상의 가능성들은 구체적인 실증이 약해서 가설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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