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기 특강

[스크랩] <특강> 넉달농사

넉 달 농사 (이방인 구원 시대)

 

 

성경은 하나님은 농부시니 라고 하여 성도의 구원을 농사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칠칠절을 지나고 나면 넉 달 동안 농사를 짓는데 이는 성도를 구원하는 시기이다.

 

1년이라는 싸이클은 인간의 일생을 축소해 놓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일 년 삼차 절기를 지내게 되어 있다.

봄에 지키는 절기로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이 들어가 있다.

여름절기에는 초실절 50일 후에 칠칠절을 지낸다.

칠칠절 이후에는 넉달 동안 아무런 절기가 없이 농사를 짓는다.

그리곤 가을이 되면 나팔절을 시작으로 속죄일과 장막절을 지내게 된다.

 

장막절을 끝으로 한해의 일을 마무리하고 긴 겨울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모든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먹고 마시는 것이나 하는 것들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모슨 삶은 곧 예수그리스도가 하실 일과 연관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곡식 농사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농사를 지으신다.

 

이스라엘이 칠칠절을 지낸 후에 넉 달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가을 절기를 준비 하였다.

가을 절기가 되면 그동안 지은 곡물들을 가지고 제사장에게로 들고 나아가서 한 해 동안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이스라엘의 농사 모습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내는 모습의 예표이다.

 

지난시간 우리는 칠칠절은 신약의 오순절임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구약의 칠칠절 이후 넉 달 농사 기간은 신약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부탁을 하셨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명령은 너희는 온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이는 곧 온 인류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라는 뜻이다.

 

세상에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어지지 않고 오직 성령께서 하실 일이다.

 

그래서 부활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서 숨을 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요 20:19-23=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받아야 할 이유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게 하신 일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듯이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사함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라고 보내신다고 한다.

 

그럼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온 족속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죄사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비밀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증거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하실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바로 성령이다.

 

행 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초실절이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이 되면 칠칠절의 실체적 모습이 이 땅에 드러나게 된다.

 

그 실체적 모습이 바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인 것이다.

 

성도들에게 임하신 성령은 예수님께서 보내주셨다. 이는 곧 예수님 자신이 온 것과 같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성도는 예수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어진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서 넉 달 동안 구원의 농사를 짓는 것이다.

 

 

수가성 여인과 넉 달 농사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통하여서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지역 수가성에서 이방 여자를 만났다.

유대인이 이방여자와 만난다는 것은 율법으로는 금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가는 것도 못마땅하였지만 더군다나 이방여자와 상종한다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제자들의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 이야기를 가지고 성령 이야기로 풀어나가셨다.

 

그리곤 그 여자와 예배 문제를 이야기 하였다.

 

사마리아 여자는 구약적 관점에서 어디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으냐고 물을 때 예수님은 이제는 구약식으로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제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새롭게 열린다고 하셨다.

그 길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 나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때 빵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빵을 드리면서 점심을 잡수시라고 하자 예수님은 뜬금없이 내가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고 한다.

 

요 4:32-34=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제자들이 의아해서 물으니 예수님이 먹을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뜻이란? 아들을 통하여서 만세 전에 작정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영생주시기로 작정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양식이니 추수니 하는 제자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한다.

 

예수님께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는 말씀은 지금은 추수할 시기가 아니고 한창 농사를 지을 때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앞뒤가 맞지 않게 “보라 희어져 추수 하게 되었다” 고 한다. 도대체 뭔 말인가? 추수 때라는 말인가 아니면 아직 멀었다는 말인가?

 

요 4:35-38=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는 말씀은 곡식 농사를 말하는 것이었고,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은 지금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시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는 말씀은 육적인 농사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추수란? 종말을 말한다.

 

종말이란? 끝이다. 곧 죽음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종말은 육체적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종말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상이 끝나는 역사적 종말이 있다.

둘째는, 인간의 죽는 개인 종말이 있다.

셋째는, 아담 안에서 있던 죄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살아나는 종말이 있다.

성도가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럴 때 옛사람은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도 죽음이고 끝이고 종말이다.

데라의 아들로서의 “아브람”은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서 죽었다.

그리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브라함”이라는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와같이 성도가 성령으로 하늘에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도 육으로서는 종말이다.

 

그런의미에서 지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종말을 고하고 추수를 한 것이다. 창기로서 살던 죄인으로서의 사람은 죽었고, 예수 안에 의인으로 새로 살아난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거듭난 사람으로 바뀌었다.

 

과거 율법 아래서는 죄인으로서 옴짝달싹 못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율법 아래선 창기라는 직업 때문에 정죄를 받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무도 없는 한 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점심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찾아가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꺼리는 사마리아 땅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제자들은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부정한 땅이라고 해서 다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굳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여인을 찾아가서 감추고 싶은 죄인으로서의 추함을 드러내셨다.

여인은 감추고 싶은 추한 과거를 예수님이 아시는 것을 보고 선지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준다고 하자 여자는 주저 없이 그런 물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생수는 배에서 솟아나는 성령이라고 하신다.

 

이에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려야 되겠는데 어느 예배당이 진짜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는 때가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약식 예배를 드리던 때는 지나갔고 이제 새롭게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도래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그 여인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알리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뜬금없이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하게 된다는 농사 이야기를 들고 나오신 것이다.

 

아니 사마리아 여자가 구원을 받는 일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는 농사이야기와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제자들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방여자인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심으로서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사건을 시청각교재로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 여자는 알다시피 너희(유대인)들이 개라고 취급하는 부정한 이방인이다.

너희들 같이 잘난 유대인들 입장에선 이방인인 이 여자는 율법 아래선 죄인이다. 그러니 율법 신앙으로는 이 여자는 지옥에 가야한다.

 

그런 죄인도 이제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린다.

 

성령이 오시면 육적 조건은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예수를 믿느냐 아니냐 로 달라진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백성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일을 알려 주기 위해서 제자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예수님이 목이 말라서 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진정으로 마셔야 할 물은 성령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물을 달라고 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한 것은 지금 추수한 것이다.

 

추수는 언제 하는가?

곡식이 잘 익어야 한다. 시퍼렇게 익지 않은 것을 추수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밭에 있는 곡식이 다 익으려면 아직도 넉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

밭이 있는 곡식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가 되지만, 예수님 눈에는 이 여자는 너무도 잘 익은 곡식이었다.

 

왜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시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가 죄인인줄 모른다. 특히나 유대인들은 더 하였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다고 이방인과 다르다고 자랑을 하였다.

유대인들은 율법 속에 구원의 능력이 들어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기에 급급하였다.

 

율법이 무엇을 말하려고 주어진 것인 줄을 생각하지 않고 그져 율법이 말하는 말씀 몇 개 지켰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선문답

 

예수님 : 야! 베드로! 너 율법을 왜? 주었다고 생각하니!

베드로 : ????

예수님 : 야! 이놈아! 율법은 너희가 죄인이라는 것을 들추어내려고 주신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 유대인 놈들은 율법으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살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지키겠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느냐!

 

베드로야! 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냐?

베드로 : ???

봐라! 내가 알려 줄테니 잘 들어라!

 

원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율법은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가 있는 곳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하자 너희가 왜? 죄인인가를 드러내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그러니 율법은 원래 필요 없었는데 인간이 범죄하자 더해진 것이야!

 

범법함으로 더해 진 것이라면 왜? 더해 졌겠나?

그것은 인간들의 죄를 들추어내려는 것이란다.

율법이 인간들을 행하여 너희들은 이제 죽었어! 라고 하고 있는 것이야!

 

롬 3: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베드로야! 잘 들어라! 율법은 말이야! 죄를 들추어내려고 주신 것이야!

그래서 너희들은 다 죽었어! 라고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해 준 것이야!

 

그러니 율법은 애시당초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죽을 놈들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고 주셨어!

 

그런데 너희 유대인 놈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다고 자랑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개 취급하면서 꼴값을 떤 것이야! 이 등신들아!

 

그럼 베드로 너 여기 있는 등신(11제자)들을 대신해서 말해봐!

 

누가 율법을 가장 잘 지킨 사람이냐!

 

1번) 율법 잘 지켰다고 자랑하는 너희 유대인들이냐?

2번)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이 여자야?

 

그야 당연히 2번이지요.

 

그걸 아는 놈들이 그래!

그래 그걸 아는 놈들이 내가 이방여자와 말한다고 이러쿵 저러쿵 나불거리고 있냐!

 

봐라!

내 앞에선 이 여자와 같이 자기가 죄인인줄 아는 사람이 가장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 되는 거야!

 

자기가 죄인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구원해 내야 할 잘 익은 곡식인 것이야!

지금 난 이 여자를 추수한 것이야!

 

내 눈에 이 사마리아 여자는 너무도 잘 익어서 따 먹은 것이야!

이런 사람이 내 양식이란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추수하러 온 것이야!

 

베드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 예! 그렇군요. 저희들은 잘 몰랐습니다.

 

그러니 잘 들어라!

이제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들에게 보내 줄 것이야!

 

그러면 너희들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넉 달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해!

어떤 농사냐 하면 여기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을 추수하는 거야!

내가 이 여자를 추수 하듯이 너희들도 내가 뿌려 놓은 곡식들을 거두면 되는 거야!

 

요 4:36-38=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성령이 오시면 잘 익은 곡식들이 나타날 것이다.

봐라! 이 여자가 동네에 들어가 메시야 이야기를 하면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눈을 들어 밭을 봐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라고 한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면 여기저기서 어이쿠 내가 죽을 죄인이었군요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아! 우리 주님께서 뿌려 놓은 것들이 잘 익어서 추수 할 때가 되었구나! 라고 거두면 돼!

 

그래서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여기저기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행 2:36-41=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실제로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베드로가 십자가 도를 증거하자 천하만국에서 올라온 사람들 중에서 성령에 감동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성령은 살리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세가 칠칠절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하던 사람이 삼천 명이나 죽었다.

 

그러나 신약의 칠칠절인 오순절에 성령에 강림으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음을 보게 된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지만 성령은 살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령께서 죄 아래 매인 자들을 살리시는 넉 달 농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이제 십자가의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엔 율법 아래 매였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으로 많이 돌아 올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옛 언약은 지나갔고 이제 새 언약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은혜시대이다.

구약을 율법 시대라고 한다면 신약은 은혜시대라고 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이제 구약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곤 신약은 시작 되었다.

이제는 율법으로 의로워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율법 외에 다른 의가 통용되는 시대가 열렸다.

 

롬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꺼내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율법 아래선 유대인만 구원이 되었지만 이제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난 후로는 온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비로서 이방인에게도 차별 없는 구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칠칠절 추수 때 밭 모퉁에 남겨진 곡물의 의미

 

칠칠절 추수 때에는 객을 위하여서 밭에 곡물을 다 베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한 것이다.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밭 모퉁이에 남겨진 이삭은 마치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말씀하신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와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는다고 하여 개 같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넘어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원래 개였다.

유대인들이 만약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지 않았다면 이방인에게 돌아올 구원이 없었다.

즉 주인이 상에서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개가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원 자손들 중에 얼마를 배역하게 하심으로서 그 자리를 비게 만들어서 개 같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자리가 돌아오도록 만드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감람나무 접붙임의 비유로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원가지 얼마를 꺾어서 이방인들을 접붙였다고 한다,

 

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게 한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일부러 유대인들의 눈을 가려서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셨다.

 

그 이유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유대인들 중에 일부가 망했기 때문에 이방인이 살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라고 탄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방인에게 경고하고 있다.

 

왜? 유대인들이 꺾이게 되었는지를 알라는 것이다.

잘난 척 하지 말고 유대인들이 왜? 잘려 나갔는지를 알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거부하고 율법에 의를 고집하였기 때문이다.

 

롬 10:1-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유대인들을 넘어지게 만드셨다고 한다.

 

유대인을 넘어지게 하시곤 이방인을 세웠다.

 

롬 9:30-3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은 율법에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로 구원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믿음에 거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방인이 유대인들 때문에 궐이 난 것이 메워지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것이다.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난 궐이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로 채워지면 다시 원가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이 비취게 될 것이다.  

 

롬 11:30-31=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약 이방인들이 교만하여 믿음에 거하지 않고 자기 의에 사로잡히면 여지없이 꺾이게 된다.

 

그래서 자긍치 말라고 한다.

 

롬 11:18-22=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바울이 자긍하지 말라는 것은 율법의 의를 붙잡지 말라는 뜻이다. 즉 인간의 행위를 자랑치 말라는 것이다.

 

이방인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잊게되면 자기 잘난 것을 자랑하게 된다.

이를 교만이고 자긍이라고 한다.

 

넉 달 농사는 율법으로 구원하지 않고 은혜로 구원을 하는 시기이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게 해 주심으로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넉 달 농사 기간에 성령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행위를 믿는다.

 

그러함에도 이 시대 대 다수의 교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버리고 율법에 의를 붙잡고 있다.

 

 

이는 이방인의 때가 거의 찼다는 뜻이다.

 

이 시대 교회의 신앙은 믿음을 버리고 인간의 행위를 붙잡는 구약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교회마다 교인들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자랑은 간데없고 자신들의 열심과 충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곧 바울의 경고처럼 이방인들이 자긍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의로 자긍하다가 꺾임을 당하였는데 그 전철을 지금 이 시대 이방인 교회들이 밟고 있다.

 

지금은 십자가 도를 전하면 도리어 핍박을 당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서만 구원이 능력이 나오거늘,,,,,

 

그럼에도 이 시대 교회들은 인간들의 종교적인 열심과 충성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한다.

 

그토록 바울이 자긍치 말라고 경고 하였음에도 그 경고를 귓전으로 흘러 보내고 지금 자긍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내렸던 강팍함을 이방인에게 돌리실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내리셨던 긍휼을 거두셔서 유대인에게 내리실 것이다.

 

이 시대 교회들의 신앙정황으로 본다면 금방이라도 주님이 재림 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성도라고 한다면 이 시대 돌아가고 있는 신앙의 양태를 종말의 현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미 2천 년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넉달농사는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넉 달 동안 추수한 곡식들을 곡간에 들일 때가 다가 온다.

절기상으로는 곡간에 들이는 절기만 남았다.

 

다시한번 절기를 정리하자면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계심으로서 완성하셨다. 역사적인 의미에선 이미 과거적 사건이다.

 

그리고 칠칠절이후 넉 달 농사기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온 세계에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시기이다. 역사적 의미에서 현재이고 지금 그 정점을 행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나팔절과 속죄일과 수장절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알곡과 가리지를 갈라내실 것이다. 역사적 의미에서 이는 장차 되어질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그 미래가 지금 곧 가까이 곧 문 앞에 다다랐다.

 

금방이라도 예수님께서 문을 열고 들이 닥칠 것만 같이 영적인 상황들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교회의 타락은 봇물 터지듯이 감당 할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인본주의 신앙이 쓰나미처럼 교회를 엄습하여 들이 닥치고 있다.

하지만 교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종교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영적인 소경이 되어 스스로의 열심에 도취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종말에 커다란 배도의 물결이 닥칠 것을 경고하였다.

 

바울의 경고가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살후 2: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절기를 살펴오면서 느끼는 것은 주님의 재림 때가 임박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절기로 보아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은 이미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 역사 속에서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사상 역사 속에 남은 것은 가을 절기들이다.

 

봄 절기와 여름 절기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완성이 되었다면 가을 절기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완성 되어질 것이다.

 

 

베드로의 경고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만물에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하였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역사이지 묵시가 아니다.

 

물론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과 동시에 묵시적 존재가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이미 유월절에서부터 장막절까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성도는 이미 장막절 안에 포함된 존재가 되었다.

 

진정으로 유월절이 이루어진 성도는 유월절의 실상이신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하게되어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 자는 유월절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다.

 

이 세상도 인간의 육체처럼 사라져야 한다.

 

베드로는 지금 사라져 버릴 그 마지막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종말을 말하면서 어떤 자들은 주의 강림하심을 허탄한 이야기로 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벧후 3:3-5=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지금도 동일하게 베드로처럼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면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영적인 이야기이지 육적인 말이 아니라고 웃어넘긴다. 교회와 교인들은 말로는 안다고 하지만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모으고 쌓고 넓혀간다.

 

이 시대 교회들이 하는 작태가 종말을 믿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과거 1992년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이장림 일당들이 예수님이 재림을 하니 교인들에게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금을 하라고 해 놓고선 그들은 정작 빌딩을 사고 재산을 늘려 간 것과 같다.

 

이 시대 한국교회들은 종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행태가 반증해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을 갈취하여 부동산을 넓히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교회의 구호들은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이, 더 넓히자는 것이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이, 더 넓히려면 인간의 열심과 충성은 필수적이다.

교인들로 하여금 열심과 충성을 이끌어 내려면 그들을 칭찬하여야 한다. 인간의 행위를 의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마다 열심과 충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설사 십자가를 증거한다 하여도 그것은 교인들의 열심과 충성과 돈을 뜯어내기 위하여 양념으로 하는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바울은 이렇게 인간을 칭찬하는 복음은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다.

 

갈 1:6-10=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인간의 열심을 의라고 하지 않으면 충성하지 않으려는 교인들이나 교인들로 하여금 충성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목사나 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기는 매 일반이다. 둘 다 똑같은 놈들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께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신 말씀이 교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작정하신대로 하나님의 각본대로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한다.

 

베드로는 세상이 추수될 그날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벧후 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 날이 되면 약속대로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 있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가 2천년이 지났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한다.

주님의 날짜로 이틀이 지난 것이다.

 

벧후 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하여서 경고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역사 속에서 실제 몸으로 완성하셨듯이 재림 주로서 분명하게 다시 오실 것이다.

 

사도바울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살전 4:13-18=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바울은 지금 영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그러니 세상에서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슬퍼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라고 한다.

 

주님은 반드시 절기로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신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분명하게 약속 하셨다.

 

가심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다.

너희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행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절기를 통하여서 계시하셨던 주님이라면 반드시 오셔야만 하고 아니 오시게 되어 있다.

 

지금 온 인류는 넉 달 농사 기간의 마지막 때에 처하여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주여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이루지니이다.

 

 

이 백성들이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시대의 징조는 분별 할 줄 모르는가?

 

 

“주여 마음에 눈을 열고 귀를 여셔서 때를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멘

 

 

 

 

출처 : 울 산 목 양 교 회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메모 :